도둑들의 직업윤리?

(Honor among thieves)

by 글쓰는 직장인

몇 해 전 개봉한 영화 중에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Dungeons & Dragons: Honor Among Thieves)"라는 영화가 있다. 유명배우의 연기, 탄탄한 스토리 등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honor among thieves"란 대체 무슨 말일까? 도둑들 사이에도 의리가 있다는 뜻이라는데 굳이 제목용으로 바꾸자면 "도둑세계의 직업윤리" 정도가 맞지 않을까 싶다. 속이고 훔치는 직업이지만 동업자끼리는 지켜야 할,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데 정직한 직업세계에도 당연히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을까? 특히 땀 흘려 일하는 블루칼라 직종에서는 더 엄격한 직업윤리가 있지 않을까?


던전앤드래곤: 도적들의 명예(출처: 위키피디아)


당연히 존재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동료를 위험 속에 혼자 두지 않는 것이다. 광산, 건설, 어선, 소방 등 위험한 직종에서 발전한 절대적 규범이다. 예고 없이 다가오는 위험과 재난은 누구라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를 지켜주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이타심을 넘어 오늘 내가 지킨 동료가 내일 나를 지켜주는 상호보험과 같은 규범으로 맹세로 승화되었다. 매슈 크로퍼드는 그의 책 『손으로, 생각으로』에서 손으로 하는 일의 세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불이 켜지거나, 안 켜지거나." 결과가 명확한 세계에서는 책임도 명확해진다.


피크타임에는 불화를 야기하지 않는다. 캐나다의 요식업 종사자 교육자료에는 "조리 중에는 갈등을 해결하려 하지 마라"는 지침이 있다. 모든 현장에는 바쁘고 위험이 고조되는 순간이 있다. 이러한 때에는 고도의 집중력과 협동이 필요하다. 그런 순간에 터져 나오는 개인적인 불만이나 불화는 모두의 집중력을 분산시켜 작업의 실패는 물론 위험까지 야기할 수 있다. 옆 사람의 딴생각이 나의 목숨을 위협하는 환경에서는 집중할 때 집중해야만 모두가 안전할 수 있다. 공동의 집중은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되었다.


전문식당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출처: 게티이미지)


동료를 남 앞에서 비난하지 않는다. 동료 간 신뢰는 무엇보다 중요하고 외부인 앞에서 동료나 후배를 비난하는 행동은 비난받는 사람의 전문성을 깎아내리는 것만 아니라 업계 전체의 위신을 추락시키는 일이다. 11세기 시작된 중세 길드로 올라가는 규범으로 내부 분쟁을 길드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외부로 알려지는 것은 길드 전체의 평판을 훼손하는 행위였다. 조합원의 실수나 비전문성은 길드 전체의 실수나 비전문성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자정노력을 먼저 기울이는 것이 중요했다.


노하우는 반드시 전수한다. 청기와 장수라는 표현이 있다. 청기와 제조기술이 유출될까 봐 제자에게도 알려주지 않아 결국 실전되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모든 숙련기술자는 몸으로 경험으로 체득한 지식이 있다. 암묵지라고도 하는데 책으로 전해지기 어려워 후배들은 선배가 알려주지 않으면 익히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이런 것을 후배에게 전수하지 않고 쥐고 있는 것은 실력이 아니라 인색함으로 취급된다. 역사학자 E. P. 톰슨은 노동자 집단의 규범을 "도덕 경제"라고 했는데, 내가 받은 것을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것이 공동체를 유지하는 방식이고 독점하는 것은 공동의 자원을 사유화하는 부도덕한 짓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블루칼라 직업윤리를 살펴보면 하나의 원칙이 보인다. 오랜 세월 위험 속에서 결과가 눈에 보이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견고하고 근본적인 원칙이 도출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인간에 대한 존중과 믿음이다. 육체노동은 정신노동과 달리 한 사람이 두 명, 세명의 몫을 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성과를 얻으려면 힘을 합쳐야 한다. 또한 언제나 위험한 근로환경 속에서는 내가 남을 지켜주어야 남도 나를 지켜준다. 성과도 정직하다. 서로 나누어야 발전하고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서로를 아끼고 존중할 때 인간답게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불문율로 자리 잡은 것이 블루칼라의 직업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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