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착취의 지옥도(남보라 등, 도서출판 글항아리)

by 글쓰는 직장인

"은행 경비원 한재민씨는 코로나19 이후 더 바빠졌다. 객장에 오는 고객마다 열체크를 하는 틈틈이 어르신들의 공과금 납입과 현금 인출을 도와야 한다. 그런데 동전 포장까지 해야 하는 날이면 점심도 빵으로 때우며 일했다.


- 은행 근처에 버스, 택시 회사가 있어서 동전을 자주 가지고 와요. 그걸 10개 단위로 포장하는 업무를 나한테 시켜요. 자판기 업체까지 동전을 가지고 오는 날이면 점심시간에 밥도 못 먹고요. 그런데 동전 업무는 경비가 하면 안 되는 거거든요. 너무 힘들어서 부지점장님한테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요일을 정해서 동전을 받는 건 어떻겠냐며 건의를 했어요. 그런데 이튿날 바로 용역업체에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사람이 융통성이 없다면서 나한테 막 뭐라고 해요. 자기네가 동전 포장 같은 현금 관련 업무는 하면 안 된다고 교육까지 해놓고서요.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이전 지점에서는 현금자동입출금기의 현금 보충 업무를 재민씨에게 시켰다. 처음에는 그 업무를 했지만 나중에 경비원이 할 수 없는 업무라며 못 한다고 말하자 은행 측에서 경비원 교체를 요구했다. 고객으로부터 불친절하다는 민원만 들어와도 은행 측은 용역업체에 경비원을 바꿔달라고 했다. 이런 일들로 지점을 여러 번 옮겼는데 업체는 한 번도 재민씨의 말을 귀담아들은 적이 없다."

(중간착취의 지옥도 중에서)


몇 해 전 은행에 동전을 바꾸러 갔다가 경비원과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동전을 갖고 은행에 들어서자마자 경비원이 먼저 다가와 동전을 단위별로 분류했냐? 안 했냐? 기계가 고장 나면 어쩌냐? 하며 취조하듯이 다루는 것이었다. 결국 말다툼을 하고 지점장이 나와서 말려서 끝이 났는데 그때는 이유를 몰랐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다.


경비에게 동전 업무는 점심시간을 빼앗고 나아가 직장도 잃게 만들 수 있는 자존감을 해치는 일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한재민씨가 나와 말다툼한 경비였는지도 모르겠다. 한재민씨가 이제는 동전분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없는 자에게 귀찮은 일을 떠넘기는 불합리는 놔두고 죄없는 개인들이 다투는 일도 없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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