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 끝에 낙이 오나?

by 글쓰는 직장인

신화나 소설을 보면 주인공이 엄청난 고난을 겪으며 각고의 노력을 더해 마침내 성공하는 스토리가 자주 등장한다. 보상의 개념 혹은 권선징악적 관념에 사로잡혀서인지 모두가 고생한자가 성공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갈채를 보내며 환호한다. 그런데 정말 그러할까? 특히 현대처럼 지능정보화가 고도화된 사회에서도 고생만 하면 성공하는 것일까?

한 책에서 읽은 초밥을 만드는 로봇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났다. 일본에서 초밥을 만드는 장인이 되려면 30년이 걸린다고 한다. 밥 짓는데 10년, 회 써는데 10년, 초밥을 움켜쥐는데 10년 해서 30년은 수련해야 진정한 장인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TV의 생활의달인처럼 초밥장인이 움켜쥐는 한 움큼에 밥알이 100여 개 정도로 항상 일정하다는 - 한 두 알 차이만 나는 - 방송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초밥을 만드는 로봇이 등장하여 장인의 밥 짓기, 장인의 칼솜씨, 장인의 움켜쥐기를 시연하며 장인 수준의 맛을 내는 초밥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에 일부 시민은 마치 자신의 가치가 부정당한 것처럼 장인의 노력이 도둑맞았다고 분개하였다는 것이다.

아마 기존에는 인간이 육체와 정신으로 초밥을 만들어야 하므로 기술을 체득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당연하고 투입한 시간의 차이에서 오는 수준차가 분명히 존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로봇이 만드는 초밥에는 잘못된 설계는 있을 수 있어도 잘못된 결과는 존재하기 어렵다. 같은 방법으로 만들었으니 같은 맛을 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다소 결이 다른 말이기는 하나 초밥을 만드는 로봇과 장인의 이야기도 유사한 점이 있다. 로봇이 초밥을 더 잘 만드는데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며 30년간 초밥을 배울 이유는 없다고 본다. 급격하게 변하는 기술환경에서 직장인들은 나를 닮은 로봇이 개발되는지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30년 차 직장인이 로봇과 동일한 기술을 보유할 수는 있어도 로봇처럼 쉬지도 않고 변함없이 일할 수는 없기 때문에 더욱 불리하다.

또 하나 유의할 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력->가축->기계로 계속 노동력이 변화해 오듯이 지능화된 로봇의 등장은 인간이 더 이상 육체적 노동에 전념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징후이다.

앞으로 성취를 위한 인간의 고생은 육체적 분야보다는 인간 만이 할 수 있는 창작이나 돌봄 활동 같은 정서적, 감성적 분야에 집중되어야 할 것 같다.

어디서 고생해야 낙이 오는지 유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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