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
19장.
추석 당일, 아침부터 비가 쏟아졌다.
우리가 염려하던 일은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요양원에 계신 어머님을 모시러 간 남편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님의 쓴소리와 함께 온갖 모진 말을 들었다.
“왜 우리 집이 아니고, 너희 집이냐.”
“추석 연휴가 이렇게 긴데, 내 집에서 하룻밤도 못 자게 하니?”
“너희 진짜 왜 그러냐”
비수가 되어 꽂히는 말씀에 남편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아버님은 아버님대로 불편하셨다.
“왜 우리 집이 아니냐? 왜 너네 집으로 가서 추석을 보내냐?”
“내가 거기서 뭐 하냐?”
억울함과 분노가 섞인 그 말에 우리는 또다시 무너졌다.
그날의 하늘은 끝내 우리 편이 아니었다.
그렇게 2025년의 추석을 맞이했다.
화가 난 어머님의 얼굴은, 우리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치매의 그늘 속에서 남은 건 화와 불안, 그리고 끝없는 서운함뿐이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오늘은 내가 나설 차례라고 말이다
“어머니, 며느리 집에 오셨으니 맛있는 것도 드시고, 편히 주무시다 가셔야죠”
나답지 않은 말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남편도, 아들도, 딸도 아닌 조용하기만 했던 며느리의 한마디에 어머님은 잠시 주춤하셨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조금 더 다가섰다.
“어머니, 지숙이 집에 오셨으니 지숙이가 만든 음식도 드시고, 목포 친정에서 온 과일도 드시고, 낮잠도 주무시고 가세요. 화내지 마시고요. 어머님 오시면 드리려고 예쁜 옷도 백화점에서 사 왔어요. 한 번 입어보실래요?”
있는 말, 없는 말 다 꺼내어 억눌린 공기를 풀었다.
그러자 어머님의 표정이 서서히 풀리며 “맛있다, 맛있다” 하시며 식사를 하셨다.
굴비 한 토막을 밥 위에 얹어드리자,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그제야 숨이 놓였다.
식사가 끝나자 어머님은 조용히 말씀하셨다.
“지숙아, 방으로 가자.”
남편은 어머님의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 부축했고,
건장한 아들은 앞에서 양손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방에 들어서자, 어머님은 며느리인 내게 낮게 속삭이셨다.
“나 변을 본 것 같다.””변비가 심해서 고생했는데, 여기가 편한지 변을 봤다””네가 좀 치워줘라”
남편도, 아들도 아닌 나를 향한 그 부탁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어머님을 닦아드리고, 기저귀를 갈아드렸다.
그제야 어머님은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넌 매일 하던 사람처럼 잘한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니, 지숙이가 보육교사잖아요. 매일 아가들 기저귀 갈고닦는 게 일이에요.
어머니 편하셨죠? 아버님이나 아들이 하기엔 힘들 거예요. 제가 할게요. 앞으로 저희 집에서 쉬시다가 요양원가셨다가 자주 놀러 오세요.”
그러자 어머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맞다, 맞아. 아들이 하기엔 어렵지.”
그렇게 말씀하시곤 따뜻한 방 안에서 또 스르르 잠이 드셨다.
비 내리던 추석날,
나는 어머님의 손을 꼭 잡고 생각했다.
이제야 조금은, 어머님의 마음에 닿았다고.
이제야 조금은, 진짜 가족이 되었다고 믿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