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

사라진 가정예배의 기억

by 지숙수담

18장.


어머님께서는 매년 명절이면 빠짐없이 가정예배를 드리셨다.

어머님과 아버님, 우리 가족 다섯, 시누이네 가족 네 명까지 열한 명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예배를 드리곤 했다. 늘 가정예배의 아침은 시끌벅적했다. 새벽 다섯 시부터 “몇 시에 출발하느냐, 일찍 오너라, 일곱 시에 예배드리자” 하시며 남편의 전화기에 불이 붙곤 했다. 우리는 간당간당 시간을 맞추어 도착했고, 시누이네는 늘 30-40분쯤 늦어 결국 어머님께 한 소리를 들은 뒤에야 비로소 가정예배다운 예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각자 성경책을 들고, 준비한 헌금을 내어놓으며 아버님의 인도에 따라 예배가 시작됐다. 찬송을 부를 때면 음정이 뒤섞여 삼중창인지 돌림노래인지 모를 웃음이 번지기도 했다. 웃음을 참느라 어깨가 들썩이던 순간들이 지금은 더없이 그리운 추억이 되었다. 그때가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찬송이 끝나면 어머님이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를 올리셨다. 기도가 마치면 교회에서 받은 말씀을 토대로 아버님이 짧게 설교하셨고, 마지막 기도는 시누이가 하거나, 남편이 맡기도 했다. 예배는 늘 은혜로웠고, 우리 가족의 중심에는 언제나 어머님의 기도가 있었다.


예배가 끝나면 곧바로 어머님의 잔칫상이 차려졌다. 겉절이, 갈비찜, 잡채, 각종 튀김까지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가득가득 상에 올려졌다. 어머님의 손맛은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깊은 맛이 있다. 사실 나는 원래 맛이 없으면 젓가락을 내려놓는 성격이지만, 어머님의 음식 앞에서는 늘 숟가락도 젓가락도 멈추지 않았다. 친정의 음식보다 더 자주, 더 깊게 생각나는 건 언제나 어머님의 음식이었다.


명절에 친정으로 잘 가지 않았던 이유도 결국 그 손맛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수십 가지 음식을 정성껏 차려내시던 어머님의 명절상은 단순한 밥상이 아니라 가족을 이어주는 울타리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시간이 사라졌다. 가정예배도, 웃음소리도, 음식 냄새도 사라졌다. 요양원이라는 낯선 공간 속에서 외박조차 허락되지 않고, 짧은 외출만이 허락된 지금의 현실은 우리 가족을 더욱 무겁게 한다.


매년 명절이면 다시 떠오른다. 함께 모여 찬송을 부르며 웃던 순간, 기도의 울림, 그리고 어머님의 따뜻한 밥상. 그 기억이 있기에, 우리는 여전히 오늘을 버텨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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