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병과 긴 명절 앞에서
17장
이제 다음 주면 추석이다.
우리 가족은 아직도 어머님을 집으로 모셔와야 할지, 아니면 요양원에 계시도록 해야 할지 고민 속에 있다.
어머님은 완고하시고, 아버님 또한 같은 마음을 고수하신다.
오늘 아버님은 남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다.
“너희 엄마, 집으로 모셔와서 전담 요양사를 두고 돌보는 게 어떻겠냐.”
남편은 지금도 어머님 요양원 비용, 아버님 댁 생활비, 관리비까지 더해져 빠듯한데 거기에 전담 요양사비용이 이백이 넘는데 알고 계시는 거냐고 말씀드렸다고 한다. 자신도 이제 쉰이 넘어 언제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하며, 아직 공부해야 할 아이들 셋도 아직 있고, 이제는 나도 좀 우리 집 식구들 챙기며 먹고살고 사람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하소연하듯 울부짖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그렇게 말씀드렸을까 싶다가도, 남편은 그 순간 긴 병에는 효자도 어쩔 수 없다는 현실을 체감했다 한다.
경제관념도, 가장의 역할도 모르시는 아버님과의 대화는 늘 단절되었다. 소통이 어려웠고, 일방적인 말뿐이었으며, 최소한의 공감조차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아버지에게 실망하고 돌아오는 남편의 모습이 애처로워 한마디도 꺼낼 수가 없었다.
이제야 외로움에 사무치며 아내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는 아버님의 현실 또한 안타까워 보였으나, 그마저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나는 몰랐다
시누는 요양원에서 어머님을 지극히 돌보다 허리를 전혀 쓰지 못하게 몸이 망가져버렸다. 이번 명절에도 동생에게 모든 일을 떠넘기는 모습이 괘씸하게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오죽 힘들면, 자기 부모를 외면할 수밖에 없을까. 오죽 지쳐야, 그리할 수 있을까.
추석을 앞둔 우리의 마음은 무겁다.
긴 연휴가 달갑지 않고, 연휴가 연휴답지 않음을 잘 알기에, 눈치만 깊어진다.
긴 병은 가족을 시험하고, 그 시험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