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님

나와 어머님의 첫 시간

by 지숙수담

16장


나는 스물두 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다.

남편의 집으로 들어가던 날, 모든 것이 낯설고 불편했다.

시할머니, 시아버님, 시어머님, 그리고 호랑이띠 윗시누까지 있었다.

한 집에 모여 사는 대가족의 공기는 나에게 너무도 버거웠다.


시할머니는 자신밖에 모르던 분이었다.

시아버님은 그분의 작은 그림자 같았다.

시어머님은 철두철미하고 매서우며 예민하셨다.

결벽에 가까운 단정함과 보이는 이미지를 중요시하시는 분이었다.

윗시누는 늘 바른 말과 바른 소리로 설교를 하던 유치원 교사였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고 체구도 말랐다.

말수도 적어 어머님 눈에는 늘 부족한 며느리로 보였을 것이다.

모르는 예절과 어려운 관계들이 내 어깨에 얹힌 채, 신혼생활은 어느새 버겁고 외로운 시간의 연속이 되었다.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피곤함과 졸음은 늘 함께였다.

잠시 누우려 하면 시할머니는 불편한 기색으로 말씀하셨다.

“손주며느리는 편하게 누워 자네… 뉘 집 며느린지 참.”

그 말은 내 가슴에 작은 상처로 남았다.

어머님은 깔끔하고 단정한 분이었다.

내 서툰 손길마다 면박을 주셨고, 그 말들은 비수처럼 깊이 박혔다.


첫아이를 낳고 몇 해가 지나자 몸은 점점 말을 듣지 않았다.

자주 체하고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급기야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어머님은 늘 “잘 좀 먹지! 또 남기니?”라고 하셨고,

밥상마다 “안 먹으니 소말리아 사람 같네”라고 하셨다.

그 말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팠고, 삶은 무거워 숨이 막혔다.


남편은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어느 날 내 손을 잡아끌고 집 근처 한의원으로 데려갔다.

한의원 원장님은 한 해 가까이 내 상태를 살피며 돌봐주셨다.

원장님은 남편에게 단호히 말씀하셨다.

“이대로 두면 아내분이 큰일 난다. 저러다 죽는다. 어떻게든 시댁에서 나와 살아야 한다.”

그 말에 남편은 결심을 굳혔다.


남편이 분가 의사를 전했을 때 시댁의 반응은 거셌다.

욕설과 질책이 쏟아졌고, 아들과 며느리를 향한 말들은 차갑고 날카로웠다.

그 폭언 속에서 나는 숨 쉬기조차 어려웠다.

그럼에도 남편은 내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그 결정은 우리에게 목숨 같은 도피였고,

어머님에게는 배신처럼, 아버님에게는 체면 손상처럼 비쳤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어머님이 침묵으로 견뎌오신 시간의 무게를, 겉으로 말씀은 적으셔도 속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삼키셨는지를.

내가 부족해 보였을 때, 그 말들 뒤에는 기대와 걱정이 숨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분가의 결정은 가족의 일상에 큰 파장을 남겼다.

오랫동안 시댁과의 관계는 어색했고, 어머님과 나 사이에도 균열이 생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서로를 이해하는 구석도 생겼다.

어머님의 단정함과 잦은 훈계는 결국 가족을 지키려는 다른 표현임을 깨닫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아픔과 부끄러움은 지금의 우리를 만든 불꽃같은 시간이었다.

힘들고 외로웠던 젊은 날의 기억은 아직도 마음을 건드린다.

그러나 그 속에서 어머님이 보여주신 작고 단단한 사랑도 함께 남아 있다.

무거웠던 사랑은 결국 나를 일으켜 세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더 단단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