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

가을에 남은 얼굴

by 지숙수담

15장


어느새 또 가을이 다가온다.

바람이 선선해지면, 나는 자꾸 어머님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그해 가을, 우리의 추석은 달랐다.


아버님의 형제들이 모여 ‘이제는 각자의 집에서 추석을 보내자’고 결정을 내린 뒤였다.

큰집으로 모이지 않는 명절은 처음이었고, 우리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어머님이 쉴 수 있도록 여행을 떠나보자고 마음을 모았다.

남편의 회사 협력 리조트가 용인에 있었고, 저렴하게 예약이 가능해 큰 부담도 없었다.

예배를 마친 뒤, 우리 집 식구들은 미리 준비한 음식을 챙겨 리조트로 향했다.


하지만 여행길은 순탄치 않았다.

어머님은 아들 차 외에는 극도로 불안해하셨고, 공황장애를 앓고 있어 낯선 차는 타지 않으셨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온 가족이 함께하자는 마음으로 어렵게 모시고 길을 나섰다.

그 옆에서 아버님은 형제들이 집을 찾지 않는 현실에 서운함을 분노로 바꾸셨다.

“내가 집에 없을 때 동생들이 오면 어쩔 거냐” 하시며, 여행 내내 불만을 터뜨리셨다.

연휴 내내 아버님의 형제들은 전화 한 통, 발길 한 번 하지 않으셨고, 아버님의 서운함은 결국 우리 자식들에게 쏟아졌다.


나는 그때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늘 아버님의 감정은 우리 몫이 되어야 하는지,

왜 어머님은 그 옆에서 묵묵히 참기만 하셔야 했는지.

숨죽여 참으시는 어머님의 얼굴은 말이 없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곪아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나는 뒤늦게야 알았다.


그날, 어머님은 우리와 함께한 여행에서 잠시잠깐 웃으을 보이시며

“내가 또 이런 호사도 누려보네”하셨다.

그 말씀은, 평생 명절이면 남편의 형제들을 맞이하며 지쳐 있던 마음을 돌려 표현하신 것이었을 것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집안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비로소 한 사람으로서 마음 편히 앉아 음식을 드시며 웃으실 수 있었던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아마 그것이 어머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리신 진짜 휴식, 진짜 명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우리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그 웃음이 얼마나 귀했고, 그 평안이 얼마나 짧았는지를 이제야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래서일까.

가을만 되면, 나는 자꾸 그날의 어머님 안색이 떠오른다.

미소 짓고 계셨지만, 어쩐지 창백했던 얼굴과

말없이 우리를 바라보시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올해도, 내년에도, 가을이 오면 다시금 겹쳐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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