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앞에서 마주한 현일
14장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누군가에겐 기다려지는 쉼이겠지만, 우리에게는 긴장과 눈치, 그리고 또다시 무너질까 두려운 마음이 먼저 앞선다. 긴 연휴라는 단어가 달갑지 않고, 연휴가 연휴 같지 않음을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어머님은 매주 주일이면 동생이 담임목사로 계신 교회 예배당을 찾으신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차 안 공기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운전석에 앉은 남편은 백미러로 뒷좌석 어머님의 안색을 살피며, 오늘도 “집에 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실까, 마음을 다잡는다.
아버님은 그 말에 또다시 흔들리신다.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채, “추석이니 집으로 모셔오자”라는 통보 같은 말을 던지신다. 자식들은 그 앞에서 늘 무거운 침묵을 삼킬 수밖에 없다. 남편은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어머님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하며 운전을 이어가지만, 그 현실이 야속하고 감당하기 힘들다며 내게 토로하곤 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긴 연휴가 달갑지 않고, 연휴가 연휴 같지 않음을 알기에, 말 한마디조차 조심스러워졌다. 집안 공기는 무거워지고, 작은 말이 불씨가 될까 두려워 입을 닫게 된다. 어느새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기보다 눈치만 살피는 식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잊히지 않는 기억도 있다.
한 번은 작은집 식구들이 마련한 강원도의 별장에서 온 가족이 모여 지냈던 추석이 있었다. 그날 어머님은 “내가 또 이런 호사를 누리네” 하시며 흐뭇하게 웃으셨다. 늘 우리 집에만 모여 아버님의 형제들을 맞이하던 고단한 명절과 달리, 그날은 잠시 손님이 되어 대접받고 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어머님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린 진짜 ‘휴식 같은 명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다시 돌아온 명절은 언제나 똑같았다. 준비와 눈치, 갈등과 무거움. 강원도의 별장 추석은 단 한 번이었지만, 어머님에게는 가장 오래 남은 기억이 되었을지 모른다.
추석이 다가올수록, 집 안은 더 예민해지고, 모두가 한 발짝씩 더 조심스러워진다. 어머님의 그리움, 아버님의 고집, 남편의 무너짐, 그리고 나의 눈치. 그 모든 것들이 한데 엉켜, 명절은 축제가 아닌 또 하나의 고비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사랑과 책임 사이에서, 효심과 현실 사이에서,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서다. 긴 연휴는 우리에게 쉼이 아니지만, 그 무게조차도 결국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끌어안아야 할 몫임을 알기에 이마저도 감당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