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쌤의 뒤죽박죽 여행이야기

두 번째 목포, 바람을 타고

by 지숙수담

9화.

긴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날, 남편이 먼저 말했다.

“우리 어머님 댁 가자.”

그 말 한마디가 유난히 고마웠다. 평소라면 내가 먼저 제안하곤 했지만, 이번에는 남편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아마 나보다도 먼저, 나의 고향을 그리워한 게 아닐까.


친정엄마는 올해 일흔셋.

평생 장사를 하시며 허리가 굽었지만, 그 미소만은 언제나 곧다.

2남 2녀 중 막내딸인 나는 얼굴도 성격도 엄마를 빼닮았다.

그래서일까, 남편은 늘 말한다.

“장모님 보면 기분이 좋아져. 여보랑 진짜 판박이야.”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부드럽게 풀린다.


허리디스크 이후 장시간 차에 앉아 있는 일이 두렵지만, 이번엔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가자. 내 고향인데, 한 번쯤은 무리해서 다시 걸어봐야지.”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구름,

새벽 내내 조용히 졸던 아이들,

운전대에 손을 얹은 남편의 옆모습.

그 장면들 속에서 이미 여행은 시작되고 있었다.

목포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나를 반기는 바다의 냄새였다. 아이들은 이 비릿한 냄새를 싫다 하지만, 짭조름하고, 낯익고, 그러나 오래 만에 맡으니 낯설지만, 좋았다.

유달산 아래로 흐르는 회색빛 바다 위로 케이블카가 천천히 움직였다.

우리가 첫발을 내디딘 곳은 해상케이블카 고하도 전망대. 걷는 것이 더 좋아 이리저리 걸어 올라가 보았다.

살랑살랑 가을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나는 난간에 기대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릴 적 이곳은 그저 ‘멀리 보이는 섬’이었는데, 이제는 나를 부르는 듯한 풍경이었다.

남편이 묻는다.

“괜찮아? 허리 아프진 않아?”

나는 웃었다.

“응, 바람이 다 낫게 해 줬어.”

그 말이 조금은 과장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전망대를 내려오자, 길가에 고흐 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알록달록한 색감, 두꺼운 붓 터치, 그리고 태양처럼 빛나는 노란색. 나는 본능적으로 그 앞에 섰다.

남편이 말한다.

“여보는 고흐보단 모네 같아. 감성은 있는데 정리는 안 돼.”

아이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사춘기 아들 둘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벽 사이로 흘러가는 소리가 참 좋았다.


다음날 이른 아침 걷다 보니 바다분수대가 있었다.

물줄기가 하늘로 솟구치는 것을 보고 싶었지만, 이른 시간 햇살만 반짝였다.

훌쩍 커버린 둘째의 손을 잡고 걷다 보니 이게 행복이지란 생각도 해보았다.

“시원해!”

나도 아이처럼 두 팔을 벌렸다.

“진짜 시원하다~!”

그 순간, 오래 묵은 피로와 걱정들이 모두 물보라 속으로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참 많이 걸었던 것 같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니 풍차 언덕이 나왔다.

하얀 풍차는 바람에 따라 느리게 돌고 있었고, 주변에 낚시하는 사람들로 가득이었다.

나는 풍차 앞에서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남편이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여보, 이건 진짜 여행 사진이다.”

사진을 확인하니 머리카락은 흩날리고 눈은 반쯤 감겼지만, 웃음만큼은 가장 자연스러웠다.

“이게 뭐야?”

그 말을 남편이 듣더니 조용히 웃었다.


점심 무렵, 우리는 테이크목포(TAKE MOKPO) 카페로 향했다.

민트색 간판, 오래된 벽돌, 그리고 그 위로 흐르는 햇살이 너무 예뻤다.

나는 커피 한 잔을 들고 벤치에 앉았다.

아이들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엄마, 완전 인플루언서 같아.”

“이건 설정샷”

나는 대답 대신 웃었다.

커피 향 사이로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마음이 잠시 멈췄다.

목포는 변했지만, 내 기억 속의 고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장소는 연인의 조형물이었다.

두 남녀가 서로에게 하트를 건네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같은 포즈로 서서 말했다.

“여보, 여기서 봐. 예쁘게 찍어줄게”

“응, 좋아 좋아”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었다.

바다와 바람, 가족의 웃음소리가 뒤섞인 그 순간이,

어쩌면 이번 여행의 가장 완벽한 장면이었다.


고향은 늘 나를 처음으로 돌려놓는다.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조용하면서도 벅차게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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