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교실 밖의 상처를 마주하다
9화
보육교사 3년 차, 어느덧 교사라는 이름이 조금은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내가 근무하던 어린이집은 개원한 지 얼마 안 된 신생 원이었고, 만 1세 반이 두 반이었다.
나는 다섯 명의 아이가 있는 원담임반을 맡았고, 옆 반은 열 명의 아이를 두 교사가 함께 보는 투담임반이었다.
학기가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 작은 사건 하나가 원 전체를 흔들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바깥놀이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이었다.
우리 반은 입구 쪽 교실로, 투담임반은 끝쪽 유희실 옆 교실로 향했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데리고 들어와 손을 씻기고 자유놀이를 시키던 중, 복도 끝에서 “아이들이 넘어졌어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투담임반 아이들이 우르르 넘어졌다는 것이었다.
곧 교사들이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교실로 들어갔다.
그 또래의 아이들은 아직 신체 조절력이 부족해 자주 넘어지곤 했다.
그날도 평범한 하루의 해프닝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날 오후, 일이 시작됐다.
하원 후 청소를 하던 중 투담임교사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선생님, ㅇㅇ가 팔이 아프대요. 손도 잘 들고, 밥도 잘 먹고, 놀기도 잘했는데 왜 그럴까요?”
그 교사는 초임이었고, 반 아이의 행동이 걱정된 듯했다.
나는 아이를 살펴봤다. 겉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다.
풍선을 띄워주며 “잡아볼까?” 하니 아이는 웃으며 손을 뻗었다.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 혹시 아파하면 병원에 가보세요.” 하고 조심스레 조언을 남겼다.
그날 저녁, 부모가 전화를 걸어왔다.
병원에 다녀왔는데, 아이의 팔이 빠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경찰이 원에 찾아왔다.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된 것이었다.
그날 이후 원은 아수라장이 됐다.
원장님은 울며 원인을 찾았고, 교사는 경찰의 조사를 받으며 죄인처럼 불려 다녔다.
CCTV에는 아이들이 복도에서 걸어가다 교사의 발에 걸려 넘어지고,
교사가 아이를 일으켜 세우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부모는 “고의로 아이를 낚아챘다”라고 주장했다.
며칠 동안 경찰, 학부모, 원장, 교사 모두가 지쳐갔다.
어린이집은 ‘아동학대 의심 시설’로 낙인찍혔고, 민원이 폭주했다.
교사는 결국 퇴사를 결심했지만, 원장님은 “지금 그만두면 책임 회피로 보인다”며 붙잡았다.
시간이 흘러 1년 후,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되었다.
하지만 남은 것은 상처뿐이었다.
그 일을 지켜보며 나는 깊이 흔들렸다.
아이들을 위해 매일 애쓰는 교사들이 왜 이렇게 쉽게 상처받고,
왜 이렇게 쉽게 무너져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교사는 언제나 을이다”라는 냉정한 현실 앞에서 숨이 막혔다.
그날 이후 나는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교사의 일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경찰서를 오가던 그날의 얼굴, 울음을 삼키던 목소리,
그리고 아이들을 떠나던 마지막 뒷모습까지 모두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아이들이 넘어지면 괜히 심장이 쿵 내려앉았고,
학부모의 말 한마디에도 숨이 막히곤 했다.
그 일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 동료 교사의 일이, 내 마음에 번아웃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교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깨달았다.
교사는 상처받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보듬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내가 다시 교실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그때의 교사, 그 동료의 눈빛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은 끝났지만, 내 안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교사로 살아간다.
더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무너진 누군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조금 더 단단한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