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처럼,친구처럼
8화
교사의 두 얼굴
내가 맡았던 첫 0세 반은 원에서 가장 작은 친구들이 모여 있어 ‘새싹반’이라 불렀다. 이름처럼 여린 새싹 같던 아이들은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생명의 기적이었다. 반에는 3개월, 7개월, 11개월 된 세 아가가 함께 지냈다.
이제 막 100일을 넘긴 3개월 아가는 바운서에 눕혀 우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킨 뒤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내 몸과 한 몸처럼 붙어 있어야만 안정을 찾았다. 7개월 된 아가는 이유식을 먹으면 방긋 웃다 울다를 반복하며 교실을 기어 다녔다. 돌이 다 되어 가던 11개월 아가는 바닥에 두 발을 딛고 한 발짝 내딛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세 아이는 개월 수가 달랐지만, 모두 아가아가한 기운으로 교실을 가득 채우며 내 눈길을 한순간도 놓지 못하게 했다.
나는 하루 종일 아이들을 안고, 업고, 때로는 아기띠와 힙시트까지 동원해 지냈다. 어깨는 끊어질 듯 아팠고, 손목은 시큰거렸으며, 다리는 저려왔지만 마음만큼은 충만했다. 아이들이 처음 건네던 “엄마!”, “맘마!”, “더 줘!” 같은 말은 교사라는 나를 순간 엄마로, 때로는 친구로 불러 세웠다.
점심시간이 되면 교실은 잠시 고요해졌다. 아이들이 혹여 깰까 숨죽여 밥을 삼키곤 했다. 밥 한 숟가락을 겨우 입에 넣는 순간, 뽈뽈뽈 기어와 안아 달라는 손길을 내미는 아이를 품에 안던 기억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다. 깍두기 씹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나날, 그 시간조차 아까워 아이들 곁에 온전히 머물렀다.
그때의 나는 매일이 초심이었다. 교실을 더 안전하게 만들고, 작은 손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도록 환경을 꾸리는 데 누구보다 집착했다. 아이들에게 교사는 엄마 같은 안정감을 주면서도, 동시에 친구처럼 웃고 놀 수 있는 존재이길 원했다.
돌이켜보면, 그 새싹 같은 아이들의 세상은 오직 교실이라는 작은 울타리였고, 나는 그 세상 전부였다. 아이들이 내 품을 찾았다는 건 의지이자 믿음이었다. 그 믿음을 받은 나는 반드시 그 믿음을 돌려주고 싶었다.
그때의 첫 마음은 지금도 나를 지탱해 준다.
엄마 같고, 친구 같은 교사의 두 얼굴을 잊지 않고, 오늘도 나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 작은 손이 내 손을 꽉 잡아준 날의 첫 선물도 기억하며 초심 그대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