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마음이 먼저 온 아이이야기
10장.
중간에 입소한 만 2세 남자아이는 유독 조용했다. 늘 무표정한 얼굴로 교실을 서성였고,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OO아, 우리 이거 해볼까?” 하고 말을 건네면 아이는 말없이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낯선 교실, 낯선 교사, 낯선 친구들. 모든 게 낯설었던 아이에게 어린이집은 세상이 너무 컸다. 나는 아이가 교실 속 한 구석에만 머물지 않도록, 아이들 가까이 다가가 함께 놀 수 있는 상황을 매일 반복해 주었다. 그러나 아이는 여전히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또래 아이들은 호기심에 물었다. “선생님, OO 이는 말 못 해요?”, “OO 이는 왜 저래요?”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들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OO 이는 아직 말할 준비가 안 됐대.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조금 어려운 거래.” 아이는 고개를 푹 숙였고, 낯선 환경과 새로운 교사, 많은 친구들 사이에서 위축되어 있었다. 때로는 또래보다 발달이 느려 보이기도 했고, 기본생활조차 따라가려 하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런 아이가 안쓰러워 마음이 갔다. 한 달, 두 달, 세 달이 지나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럴수록 나는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 ‘이 아이는 왜 이럴까?’가 아니라, ‘이 아이는 얼마나 힘들까?’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정말 이 아이를 이해하고 있을까?” 그리고 교사로서 반성적 사고를 시작했다. 아이는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가 아니라, ‘아직 말할 준비가 되지 않은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말보다 부드러운 눈빛으로, 제시나 제안보다 기다림으로 다가갔다.
아이는 ‘선택적 함구증’의 특징을 보였다. 나는 놀이 속에서 자연스럽게 따라 말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작은 표현 하나에도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조용한 대화의 반복이었다. 말 대신 표정으로, 눈빛으로, 손짓으로 아이의 마음을 읽어야 했다. 기다림에 지칠 때도 있었지만, 그 조용함 속에 아이의 마음은 서서히 열렸다.
반 학기가 가고 다시 새 학기가 되자 아이는 다시 낯선 환경에 주춤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어느 날 아이는 내 앞에 놀잇감 바구니를 밀며 와서 작게 말했다. “이거 해요.” 그 한마디는 그 어떤 문장보다 큰 울림이었다. 점심시간에는 “더…”라고 말하며 반찬을 가리키기도 했다. 아이의 입에서 나온 그 한 단어는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마음의 문이 열렸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이 아이는 언어보다 마음이 먼저 출석한 아이였다. 나는 매일 아이의 ‘마음 출석부’를 먼저 살폈다. 그 마음이 준비되어야 몸도, 말도 교실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출석이란 단순히 이름을 부르는 일이 아니었다고 늘 생각했듯이 마음이 함께 있어야 비로소 진짜 출석이었다.
오늘도 나는 아이들의 출석을 부를 때, “마음까지 출석했습니다”라고 속으로 되뇐다. 교실에는 이름보다 먼저 도착한 마음들이 있다. 그 마음을 알아봐 주는 교사, 그 마음을 기다려주는 교사,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누구에게나 부드러운 시선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