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척 공주

예쁜 척 공주의 이야기

by 지숙수담

9화


하루의 끝, 왕국은 고요하다.

첫째 왕자는 대학 기숙사에서 국가고시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며 빈자리를 남겼고,

둘째와 막내왕자들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대장님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으로 향해, 휴대전화를 머리맡에 두고 잠들기 바쁘다.


그리고 나는, 저녁을 치우고 부엌 불을 끄고 나서야 비로소 하루가 끝났음을 느낀다.

창문 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가에 떨어지는 빗소리, 젖은 골목의 가로등 불빛,

그 풍경은 이상하리만치 정겹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웃고 있지만,

그 웃음 뒤엔 피곤한 눈빛과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함께 겹쳐 있다.

그래, 나도 안다.

이 웃음이 언제나 진짜만은 아니라는 걸.

하지만 웃지 않으면 왕국이 돌아가지 않으니까,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웃는다.


예쁜 척 공주는 늘 웃어야 했다.

아이들의 다툼에도, 대장님의 피곤한 한숨에도,

학교에서 날아오는 알림장 폭탄에도,

세탁기 속 잊힌 빨래에도.

밀린 집안일과 설거지, 그리고 쌓여 있는 공부까지—

그 모든 순간에도 공주는 미소를 지었다.

왜냐하면 그게, 왕국이 평화롭게 굴러가는 비밀이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왕국이 모두 잠든 밤 11시.

비로소 공주의 나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책상 위 스탠드 불빛 하나를 켜고,

공주는 노트북을 열어 밀린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다.

자료를 찾고, 참고문헌을 정리하고, 논문 초안을 다듬는다.

뒤집어진 연구 방향을 다시 처음부터 세우는 일은

늘 어렵고 힘들다.


눈이 시릴 때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텀블러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삼키며 생각한다.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걸까.”


공부하다 보면 어느새 시계는 새벽 2시를 넘긴다.

피로가 몰려오고, 문장 하나를 붙잡고 있다가 그대로 고개가 떨어진다.

잠깐만 허리를 펴려던 의자 위에서,

깜박—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다.


그때쯤 반대편 방에서 둘째 왕자의 문이 삐걱 열린다.

“엄마, 또 코 골아요…”

졸린 목소리로 툴툴대며 불 꺼진 거실을 가로질러 방으로 돌아간다.

나는 잠결에 그 소리를 들으며,

‘아, 또 걸렸구나…’ 하고 피식 웃는다.


그게 바로 예쁜 척 공주의 새벽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지만, 결국 코골이로 하루가 끝나는 밤.

그래도 그 모습까지 포함해서,

이 왕국은 오늘도 평화롭다.


공주는 다시 미소 짓는다.

“그래, 예쁜 척 공주로 살아가는 건 쉽지 않지.

피식 웃음도 어쨌거나 웃는 거니, 뭐 어때.”

그리고 조용히 방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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