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까지 출석합니다

교일 밖에서 만난 기적

by 지숙수담

12화.


교실에서 보낸 시간은 늘 빠르게 지나가지만,

그 시간의 여운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되살아난다

얼마 전, 오래전 첫 제자를 마트에서 우연히 만났다.

아주아주 작은 꼬마 시절, 내 품에 안겨 낮잠을 자던 그 아이는 짓궂고 호기심 많고, 아기티가 팍팍 났던 아이였다.

이젠 제법 자라 말도 또렷하게 하는 유치원생 꼬마가 되어 있었다.


“선생님!”

멀리서 내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에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고개를 돌리자 아이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쏜살같이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그 작았던 아이가 이제는 내 허리께에 닿을 만큼 자라 있었다.

나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뒤섞인 마음으로 아이를 꼭 안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아이의 어머니도 어느새 다가와

“우리 아이가 선생님 보자마자 너무 좋아하네요.” 하며

함께 웃고, 나보다 더 반가운 듯 아이를 감싸 안았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 작은 인연들이 여전히 내 곁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과 그것만으로도 교사라는 이름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며칠 후엔 또 하나의 기적 같은 순간이 찾아왔다.

동네에서 조금 벗어난 고깃집에서

함께 일하는 교사들과 오랜만에 만나 폭풍수다와 함께 시끄럽게 웃으며 저녁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고기를 굽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웃음이 가득한 자리였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다가왔다.

예전에 맡았던 아이의 아버님이었다.

아버님은 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짧게 인사하며

“선생님, 잘 지내시죠?”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일행사이로 사라지셨다. 그렇게 웃으며 또 시간을 보냈는데, 한참 후 가시며 인사하시더니 계산대로 걸어가 우리가 먹은 식사값을 모두 계산하고는

“언제나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조용히 돌아서셨다.


그 순간, 고깃집의 소음 속에서도 마음이 잔잔히 흔들렸다.

아이를 맡길 때의 불안함,

하루하루를 믿고 기다려준 부모의 마음,

그리고 그 신뢰가 이렇게 또 하나의 인사로 돌아올 줄이야.

세상에 이런 감사가 있을까 싶었다.


돌아오는 길, 참 마음이 따뜻해졌다.

교실 밖에서 만난 그 두 번의 기적 같은 만남은

내게 ‘교사’라는 길이 단순히 직업이 아니라는 걸 다시 일깨워주었다.

우리가 아이들과 쌓은 시간은

결국 마음으로 이어지고, 기억으로 남는다.


아이의 품에서, 부모의 인사에서,

나는 또 한 번 교사의 의미를 배웠다.

기적은 멀리 있지 않다.

교실 문 밖, 우리가 지나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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