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척 공주

둘째 왕자의 3 일간의 전투, 그리고 예쁜 척 공주의 새벽

by 지숙수담

16화

둘째 왕자의 사춘기는 어느새 왕국의 중반까지 깊숙하게 들어와 있었다. 요즘은 그의 눈빛만 봐도 ‘아, 오늘은 바람이 거세구나…’ 하고 알아차릴 만큼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고, 헤어스타일도 하루가 멀다 하고 짧았다 길었다, 앞머리를 내렸다 올렸다, 길렀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대장은 그 모든 변화를 못마땅해했지만, 예쁜 척 공주는 언제나 둘째 왕자의 뒤에 서서 그 아이를 지켜보고 싶었다. 아직은 누군가 자신을 믿어주고 있다는 것을, 혼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험기간이 일주일 정도 남았을 때 왕국의 공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장은 평소보다 더 예민해졌고, 공부와 담을 쌓은 것처럼 보이는 둘째 왕자를 향해 잔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공부는 하고 있는 거냐?” “뭐가 그렇게 여유롭냐?” “이번엔 진짜 제대로 해라.” 그의 말투는 날카롭고, 반복되었고, 불안이 잔뜩 묻어 있었다. 예쁜 척 공주는 그 모습을 보며 점점 마음이 불편해졌다. 왕자의 사춘기 기운이 올라올 때마다 예쁘게 장착한 공주미소 뒤로는 조바심이 가득했지만, 그래도 공주는 대장에게 되풀이해 말했다. “그냥 좀 두자. 얘 알아서 할 거야. 지금 잘하고 있으니까 그냥 믿어주자.”


대장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했지만, 공주는 둘째 왕자를 믿는 마음이 훨씬 컸다. 그러다 시험 하루 전날, 예쁜 척 공주는 결심했다. 이번엔 함께해 주자고. 둘째 왕자가 책상에 앉아 문제집을 펼치던 그 새벽, 공주도 대학원 논문을 들고 그 옆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한 장 한 장 논문을 읽고, 참고문헌을 정리하다가, 커피를 마시며 느릿하게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다 다시 새벽 두 시가 넘고, 눈이 시릴 때—바로 옆에서 둘째 왕자는 온 힘을 다해 정리해 둔 계획표를 따라 묵묵히 공부 중이었다. 혼자 앉아 있는 것보다 엄마가 옆에 있어 더 편했는지, 가끔은 “엄마, 이 부분은 좀 어렵네…” 하고 솔직하게 말하기도 했고, 문제를 풀 때마다 의젓하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 모습은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이라기보다는, 목표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작은 전사 같았다.


그리고 문득 둘째 왕자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은 나중에 왕국의 의료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 꿈을 위해 지금 이 시간을 버티고 있다는 마음이 느껴져 예쁜 척 공주는 더 큰 울컥함을 삼켰다. 믿어주자, 그래 믿어주자. 약속했으니 꼭 믿어주자. 그렇게 생각하며 공주는 졸린 눈을 비비고 또 한 장, 논문을 넘겼다.


새벽의 책상 위에 놓인 두 개의 스탠드 불빛이 나란히 빛났다. 한쪽은 사춘기의 폭풍 한가운데서도 꿈을 향해 단단하게 나아가는 둘째 왕자, 또 한쪽은 자신의 공부와 아이의 성장을 함께 감당하는 예쁜 척 공주. 그 새벽은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 속에서 두 사람은 함께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고 공주는 깨달았다.

이 아이가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이렇게나 예뻐 보이는 건

역시 고슴도치 엄마의 마음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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