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마음이 부딪힌 여행, 예쁜 척 공주의 뒷이야기
16화
예쁜 척 공주에게 이번 타국 여행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설렘이자,
또 한편으로는 예상치 못한 배움의 시간이었다.
깔깔거림과 왁자지껄한 웃음 속에 공주는 묘한 불편함과 서운함,
그리고 ‘다름’이라는 벽 앞에서 고요한 외로움을 느꼈다.
우리는 첫 왕국 행사에서 처음 만난 공주들이었다.
9년 동안 서로의 생일을 챙기고, 결혼식에 참석하고,
아이들의 성장도 함께 바라보며 쌓아온 공주들 간의 인연이었다.
하지만 오래 봤다고 해서, 마음까지 같은 방향으로 자라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예쁜 척 공주는 원래 소심하고 말도 적고,
누군가와 편해져 밥 한 끼 먹기까지 오래 걸리는 내성적 공주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힘을 빨리 잃고,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회복되는 성향인지라
그래서 모든 순간이 화려한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 웃음 뒤에 사소한 상처도 오래 품는, 그런 마음 약한 공주였다.
A나라 공주는 달랐다.
키가 크고, 9살 더 많은 언니공주로 늘 중재자의 역할을 도맡아 했다.
서로 충돌할 때도 부드럽게 다듬어 말해주고,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여유를 가진 공주였다.
언제나 따뜻한 말과 균형 감각으로 우리의 관계를 붙들어준 사람이었다.
문제는 B나라 공주였다.
성향이 예쁜 척 공주와는 정반대였고, 말투도 거칠었다
지역감정이 깔린 농담인지 비하인지 모를 발언으로
예쁜 척 공주가 태어난 왕국을 깎아내리기도 했고,
본인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하대하는 느낌을 주는 날도 많았다.
첫 만남에서의 실수는 아직도 뚜렷했고,
그때 대장님이 나설 정도로 공주는 큰 상처를 받았었다
하지만 함께하는 다른 공주들이 있었기에
그 관계를 유지해 왔다.
B공주는 항상 리드해야 직성이 풀렸고,
이미 ‘정답’을 정해놓고 상대에게 맞추기를 요구하는 답정녀 공주였다.
남의 상처는 보듬어주지 않고, 오히려 두 번 세 번 덧나게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넘기는…
예쁜 척 공주에게는 참 어렵고 벅찬 공주였다.
C공주는 유일하게 아직 결혼하지 않은 공주였다.
느긋하고 천성이 착해 배려심은 많았지만,
가끔 눈치가 없어 모두를 난처하게 하곤 했고
그런 모습이 귀엽기도, 때로는 곤란하기도 했다.
그리고 막내였던 D공주.
나이는 어려도 마음은 누구보다 깊었고,
언니공주들을 잘 챙기는 속 깊은 공주였다.
늘 양보하고, 뒤에서 고민을 삼키고,
하기 힘든 말을 하지 못해 홀로 끙끙거리는 모습이
애틋하고 안쓰러운 공주였다.
그렇게 9년 동안 함께 자란 공주들이
처음으로 함께 왕국을 벗어나 타국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우린 몰랐다.
그 시간이 지옥이 될 줄은.
오랜 준비 끝에 시작된 여행이었지만
타국의 공기 속에서 B공주의 독재 성향은 더 강해졌다.
모든 일정을 좌지우지하고, 모든 의견을 덮어버리고,
자신의 방식만 옳다고 여겨 그 안에서 우리를 몰아붙였다.
막내 D공주는 이유도 모른 채 혼이 나는 듯한 말을 들었고, 그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더 작아지고 더 움츠러들었다.
C공주는 상처를 받았지만 표현하지 못해 답답해했으며, A공주는 중재하려 애썼으나 어느 순간부터 지쳐 보였다.
그리고 예쁜 척 공주.
말이 적고 배려가 많은 성향 때문에
이번 여행은 더욱 힘든 시간이 되었다.
상대의 말투 하나, 시선 하나에도
그 마음이 크게 흔들렸고,
돌아서는 순간 에는 눈가가 핑 돌아
어깨를 쓸어내려야 할 정도였다.
2년 동안 쌓아 만든 여행은
그렇게 허망하고 아쉬움만 남긴 채 끝나버렸다.
우리는 결국 다섯에서 넷이 되었다.
모두가 알았다.
이번엔 함께할 수 없겠다고.
각국의 공주들은 서로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잠시 각자의 왕국으로 돌아가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예쁜 척 공주는 생각했다.
‘이 여행에서 나는 참 많은 걸 느꼈구나…
그리고 조금은 더 단단해졌구나.’
상처도 컸지만,
그 속에서 공주는
관계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