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개미소리로 교제합니다.
16화.
찬양대회 이후, 우리가 함께 맛본 은혜의 자리
찬양축제가 끝나고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날의 떨림과 벅참이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
우리가 1등을 했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놀라웠던 건
그 1등의 이유가 ‘율동’도,’ 과시’도 ‘무대 장식’도 아니라는 점이었다.
목사님께 전해 들은 그날의 이야기는
조용하지만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우리 초원, 하모니가 참 아름다웠대요.”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찬양이었다고…”
그 말 한 문장이 그동안의 모든 설렘과 불평과 서툼을
한꺼번에 품어 안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20~30명이 모인 초원지기들의 공동체였고,
입장도, 성격도, 기질도 제각각. 목소리 큰 사람과 막무가내 같은 사람도 있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타입도 있고,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르는 성향도 있었는데, 주님은 아셨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그 모든 색깔이 하나의 소리로 모여
우리의 목소리가 아니라, 주님께 드리는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며칠 뒤, 우리는 감사의 마음으로 식사 자리를 가졌다.
한정식집에서 따뜻한 밥을 나누고 그동안의 준비 과정과 찬양대회 뒷이야기들을 쏟아내며
서로의 수고를 격려했다.
“우리가 해냈네!”
“하나님께서 우리 초원을 기쁘게 보셨나 봐요.”
“그래도 다들 고생 많았어요.”
처음엔 쑥스러워 머뭇거리던 칭찬이 조금씩 서로를 향해 흘렀다.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셀프 칭찬’도 그날만큼은 허락하고 싶었다.
식사를 마치고 유명한 베이커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늦은 저녁까지 이어진 대화는 각자의 가정 이야기,
아이들의 성장 이야기, 그리고 삶에 대한 조용한 고백들이었다.
우리는 교사도, 부모도, 집사도 아닌
그저 성도의 이름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 시간도 주님이 어여삐 보셨을 거라 나는 마음 깊이 믿고 있다.
찬양의 자리에서 시작된 은혜가 교제의 자리까지 이어져 우리 초원을 더 단단하게 묶어주셨으리라.
나는 오늘도 개미소리 집사다.
작은 소리로 노래하고, 작은 마음으로 섬기고, 작은 발걸음으로 교제하지만 그 모든 작은 것들을 모아
주님은 큰 은혜로 채워주신다.
그리고 그 은혜의 가운데에서
나는 조용히, 감사하며 교제하는 사람으로 자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