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까지 출석합니다

연장반 창가에서 들은 작은 마음들

by 지숙수담

15화.


이번 달 영아반의 교실 주제는 ‘나의 감정’이었다.

말문이 완전히 트이지 않은 영아들에게 감정을 묻는다는 건 사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감정이라는 단어조차 아직은 낯선 아이들이라, “지금 마음이 핑크야? 아니면 레드야?”라고 묻는 일은 어른에게도 어려운 질문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이 작은 아이들이 스스로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들여다보고 표현해 볼 수 있게, 교사로서 따뜻하게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던 중, 나는 연장반에서 아이들의 ‘진짜 속마음’을 듣게 되었다. 연장반은 4시 반부터 7시 반까지 맞벌이 부모의 아이들이 머무는 곳이다. 낮과는 다른 교실, 낯선 친구들, 다른 교사들… 영아들에게는 하루 중 가장 낯설고 두려운 시간이 바로 이 연장보육 시간이었다. 처음 한 달 동안 아이들은 늘 울먹이며 나를 붙잡았다. “엄마…”, “집…”, “선생님, 엄마 언제 와…?” 작은 목소리로 묻는 아이들의 눈망울은, 불안과 그리움, 피곤함이 뒤섞인 채 창가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가는 차 소리만 들려도 혹시 엄마인가 싶어 고개를 번쩍 들었다가, 이내 다시 힘없이 떨구던 모습들. 그 모습을 매일 돌보는 나는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던 어느 날, 블록을 쌓던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OO아, 오늘 마음 색깔은 뭐였어?”

아이는 잠시 멈추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레드야.”

이유를 묻자, 아이는 단 한 문장으로 하루를 설명했다.

“엄마가… 너무 빨리 갔어…”

그 짧은 대답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들어 있는지,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또 다른 아이에게 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OO아, 너는 오늘 어떤 색이야?”

“핑크!” 하며 웃던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근데 지금은 블루야.”

“왜 블루야?”

아이의 대답은 아주 단순했지만, 마음을 찢어놓았다.

“엄마가 보고 싶어.”


연장반에서 들었던 그날의 마지막 고백은 특히 오래 남았다.

창가를 붙들고 서 있던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엄마… 늦게 오지 마…”

그 말에는 외로움, 두려움, 피곤함, 서운함… 너무 많은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그날 아이들의 감정을 들으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영아들은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말이 서툴 뿐, 마음은 누구보다 솔직하다.

그 작은 진실을 마주할 때마다 교사라는 이름이 얼마나 무겁고 숭고한지 다시금 절실하게 깨닫는다.


나는 아이들의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단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아이의 감정이 처음 닿는 어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더 따뜻하고, 더 정직해야 한다.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아이의 감정이 머무는 첫 번째 안전한 장소가 되자.

늦게 오는 엄마 대신, 아이의 마음을 먼저 안아주자.

작은 속마음을 절대 가볍게 넘기지 말자.


그날 연장반 창가에서 들은 아이들의 고백은 지금도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오래오래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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