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까지 출석합니다

오래도록 곁에 있었던 아이와 어머니의 이야기

by 지숙수담

14화.

만 1세 반, 아직 말은 어눌하고 콧물은 늘 줄줄 흐르던 한 아이가 있었다.

새로운 기관에서 적응하지 못해 엄마와 함께 우리 원으로 옮겨온 그날,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내 뒤로만 숨어 있었다.

얼굴은 포동포동 예뻤고, 눈은 자꾸만 아래를 향했다.

그 낯섦, 그 작고 조용한 걸음걸이가 지금도 선명하다.


아이의 어머니는 세상 후덕하고 성품 좋은 분이었다.

아이가 하루에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어떤 장난감을 오래 만졌는지, 점심은 얼마나 먹었는지…

어머님은 늘 진심으로 궁금해했고, 나는 마음을 아낌없이 나누고 싶을 만큼 좋았던 참 좋은 인연이었다.

마치 오랜 이웃 같고, 꾸밈없는 친구 같은 관계.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일상을 붙들어주며 아이의 성장을 함께 지켜봤다.


아이의 만 3세 해, 다시 그 아이의 담임이 되었다.

그 무렵 어머님은 육아를 거의 끝냈다는 듯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대기업 납품용 샌드위치를 만드는 공장에서 주임으로 일하던 어머님은

세 타임을 오가며 몸을 혹사시키다시피 했다.


처음 상담 기간엔 어머님은 늘 반가운 얼굴로 오셔서

아이가 보낸 하루를 한 시간 넘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 따뜻한 모습이 오래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어머님은 조금씩 늦게 오기 시작했다.

5분이 20분이 되고,

20분이 어느 날엔 한 시간이 되었다.

급기야는 야간연장반이 끝날 때까지도 오지 않아

아버님께 전화를 드려야 했던 날도 있었다.


아이의 발달은 또래에 비해 조금 느렸다.

언어도 또래보다 뒤처져 있었고,

감정 표현도 서툴고,

엄마의 부재를 온몸으로 버티는 듯한 모습이 하루가 다르게 짙어졌다.


나는 어머님께

하루하루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

준비물, 관찰되는 변화, 신경 써주셔야 할 부분들을

문자로, 전화로, 상담으로 반복해서 전해드렸다.

처음엔 정말 다정하게 듣고, 웃고, 천천히 마음을 열던 어머님이었는데, 반년이 지나면서 어머님은 점점 멀어져 갔고 그 틈에서 아이는 조금씩 더 외로워졌다.


아버님은 또 아버님대로

가정에서 늘 혼자 아이를 보살폈고

어머님의 무관심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그 갈라진 틈이 어느 순간 깊은 골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만 5세가 되던 여름,

어머님은 결국 아이를 시골 외할머니께 맡겼다.

이혼 소식도 조심스레 전해 들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어른들의 선택 앞에서 너무 조용히 견디던 아이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 지낸 어머님이라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삶이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세워지기를,

아이의 앞길이 조금 더 밝아지기를 바랐다.


이것이 그 아이와 어머님과의 마지막 만남이다.

끝이지만, 끝 같지 않은 내 마음엔 여전히 따뜻하게 걸려 있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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