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향어 속에 담긴 마음
13화.
처음 그 아이를 만났을 때, 모두들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인가 봐요.”라고 말했다.
어린이집에 다닌 지 2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말이 적고 표정이 없었다.
나는 단순한 수줍음일 거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그 아이는 처음 등원했을 때 “아니!”, “좋아.” 정도의 짧은 말을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릴 때 저랑 떨어져 친정에서 자라서 그래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이유의 전부일까, 아니면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나는 조금 더 알고 싶었다.
하루하루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같은 행동이 반복되었다.
정해진 순서대로만 움직이고, 예측 가능한 패턴으로만 놀았다.
감정 표현은 거의 없었고, 불편한 상황에서도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있었다.
‘이건 단순한 낯가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나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OO아, 오늘은 뭐 하고 놀까?”
아이의 시선은 내 손끝이 가리키는 곳으로만 향했다.
그날 아이는 와플블록을 꺼내 들더니 일렬로 길게, 아주 길게 연결하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이 성을 쌓거나 자동차를 만들 때,
그 아이는 오직 ‘길게 연결하기’만 반복했다.
“OO아, 선생님이 오리 만들어줄까?”
그제야 아이는 조용히 내 옆으로 와서
내 손동작을 눈으로 따라보기 시작했다.
오리를 세 마리 만들어주자 아이는 블록을 길게 이어
앞뒤로 천천히 움직이며 놀이를 끝냈다.
그 후로 아이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방법으로 나를 찾아왔다.
“뭐 만들까?”-“오리”
“오리 몇 마리?”-“세 마리”
아이가 내민 블록은 늘 같은 색깔, 같은 순서였다.
한 달 반쯤 지났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OO아, 오늘은 주스가게 놀이해 볼까? 같이할래?”
아이가 말했다.
“할래.”
그 한마디가, 내겐 세상에서 가장 큰 대답이었다.
아이와 나는 컵 모양 놀잇감에 과일 조각을 넣으며 주스 놀이를 시작했다.
“무슨 주스야?”
“키위.”
“이번엔?”
“딸기.”
그날 아이는 스무 번이 넘게 컵을 들고 나에게 주스를 내밀었다.
그리고 매번 같은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 반복은 더 이상 무의미하지 않았다.
그건 아이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내민 첫 번째 다리였다.
나는 그 아이의 반향어를 ‘닫힌 말’이 아니라 ‘열리는 말’로 보게 되었다.
언어의 모양보다 마음의 방향이 중요했다.
아이는 내 말을 되풀이하며 천천히 언어의 문을 열고 있었다.
그 문 앞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반향어는 때로는 메아리처럼 되돌아오지만,
그 안엔 분명 ‘나도 대답하고 싶어요’라는 신호가 숨어 있다.
그걸 알아차린 날부터 나는 아이의 말을 기다리는 교사가 되었다.
조금 느려도 괜찮았다.
그 아이는 이미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을 배우고 있었으니까.
지금 아이는 센터의 도움을 받으며 언어치료 중이다.
아이가 조금씩 성장해 가길 조심스럽게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