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야기
16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교사여야 한다
어린이집에는 늘 연간 계획표가 있다.
1년의 일정은 미리 정해지고, 모든 행사는 분기마다 운영위원회를 통해 보고되고 조율된다.
학부모 동의서, 참석 여부, 찬반 의견, 인원 조율…
아이 하나의 활동 하나에도 반드시 ‘절차’가 따라붙는다.
이번 가족발표회는 작년부터 준비해 오던 큰 행사였다.
작년 아이들의 발표회가 예상보다 큰 감동을 주었고,
그래서 올해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하는 가족 발표회를 해보자고 의견이 모였다.
선생님들은 반년 가까이 아이들과 놀이처럼 노래를 고르고, 하루하루 아이들의 리듬에 맞춰 연습을 이어왔다
억지로 시키지 않았다.
놀이처럼,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이어온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행사를 한 달 앞두고 참석 인원을 체크하던 시점에서
학부모들의 반발이 터져 나왔다.
“아이들만 하면 되지, 왜 우리가 해야 하죠?”
“이게 우리를 배려한 행사인가요?”
“난 하기 싫어요.”
“왜 다른 부모들 앞에서 이런 걸 해야 하죠?”
그 말들은 건의라는 이름을 쓰고 질책과 불만, 비난이 되어 쏟아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행사가 문제인 게 아니라, 원 전체가 문제인 듯한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교사들은 하루아침에 열심히 준비하던 사람이 아니라,
“배려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설렘은 무너지고,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우리는 결국 그 행사를 멈추었다.
이게 현실이었다.
예전처럼
“선생님, 고생 많으세요.”
“아이들 너무 예뻐요.”
“감사합니다.”
이런 말 대신,
“왜 하죠?”
“누가 결정했죠?”
“왜 우리한테 강요하나요?”
라는 말들이 더 먼저 쏟아지는 현실.
교육과 보육의 현장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엉망이 되어간다.
나는 그날,
교사가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는지 다시 처음부터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위해서인가.
부모를 위해서인가.
기관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아무도 아닌, 그저 버티고 있는 나 자신을 위해서인가.
자괴감이 들었다.
회의감도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이제는 더는 잘해도 고마움조차 없는 자리인가?”
그런 생각이 가슴 안에서 오래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나는 다시 교실 문을 열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선생님!” 하고 나를 부른다.
어제의 상처도, 오늘의 회의도
모른 채 손을 내민다.
그 작은 손 하나를 잡는 순간, 나는 또다시 무너진 마음을 주워 담는다.
어쩌면
나는 학부모를 위해 교사가 된 게 아닐지도 모른다.
기관을 위해 교사가 된 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아마도
저 손을 놓지 않기 위해 교사로 남아 있는 사람일 것이다.
현실은 여전히 거칠고, 말은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교사는 늘 오해의 중심에 서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교사여야 한다.
아이의 하루를 지켜주는 사람으로.
아이가 울 때 가장 먼저 눈을 맞춰주는 사람으로.
아이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믿는 어른으로.
나는 오늘도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이 자리에 다시 선다.
그리고,
그것이
이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