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

기억의 조각 위에 머무는 어머님

by 지숙수담

7장


– 병환의 시간들, 그리고 요양원에서 이어지는 삶


시할머니를 정성껏 모시어 천국으로 보내드린 뒤,

어머님의 몸은 서서히, 그러나 급격하게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누적된 피로와 고단한 세월이 이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던 것일까?

뇌졸중 초기 증상으로 항우울제를 다량 복용하셨고,

곧이어 뇌경색, 뇌혈관질환, 협착증, 동맥류까지 잇따라 찾아왔다.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으셨을 때에는,

예민하신 기질이 병세를 더 빠르게 진행시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의 몸은 오래전부터 이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허리, 목, 무릎, 손가락 하나까지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였고, 피부는 조금만 신경을 써도 금세 뒤집혔으며, 소화 기능은 늘 약했다.

음식도 많이 가리셨다.

몸에 좋다는 보양식을 챙겨 드신 기억은 거의 없었고,

식욕은 늘 없으셨기에 영양은 불균형했으며

약봉지는 해마다 가짓수가 늘어만 갔다.

의사 선생님이 “이미 60대의 자궁 상태가 80~90세 수준입니다”라고 했을 때, 우리는 뒤늦게야 알았다.

어머님의 안에는 오랜 세월 병이 켜켜이 쌓여 있었음을 말이다.

한 번도 쉬지 못한 몸이 이제야 “이제 좀 쉬고 싶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요양원에 계신 어머님을 찾아뵌 날,

평소보다 말수가 많으셨다.

“집에 가고 싶다.”

그 말만을 몇 번이고, 아주 조용히, 그러나 간절히 반복하셨다.

남편은 말없이 어머님 옆에 앉아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그때도, 지금도 아버님은 어머님의 병을 제대로 알지 못하셨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끝내 인정하지 않으시는 것일지도 모른다.

치매라는 현실을 아버님은 받아들이지 않으셨고,

친인척들이 건강을 물어와도 언제나 “괜찮다”라는 말로만 답하셨다.

남의 시선과 체면이 더 중요했던 아버님에게

‘병’은 곧 집안의 약함을 드러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남편은 그런 아버님의 태도를 볼 때마다 속이 답답했다.

어머님의 증상은 이미 누구나 알 만큼 분명했는데,

아버님은 여전히 모른 척하거나 담담히 넘기셨다.

남편의 마음속에는

“왜 지금이라도 인정하지 않으실까, 왜 받아들이지 않으실까”

하는 울분과 안타까움이 쌓여갔다.

하지만 그 말들을 직접 꺼낼 수는 없었다.

늘 침묵으로 가족을 지켜온 아버님이기에,

그 고집마저도 결국은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했던 것이다.


비록 기억은 흐려지고 말은 엉켜 있지만,

어머님은 여전히 품위가 있었다.

정리된 손, 가지런히 다문 입술, 곧은 등허리.

아, 이토록 단단한 분이셨지.


돌아서는 길,

괜찮다고, 우리가 잘하고 있다고 말씀드려야 할 것만 같은데

오히려 내 마음은 더 부끄럽고 미안했다.

평생 가족을 앞세우고 살아오신 어머님의 마지막 시간을 우리가 제대로 품고 있는 걸까.


기억은 희미해질지라도,

어머님이 살아낸 시간만은 여전히 우리 곁에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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