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짐 속에서도 지킨 도리
6화. 무너짐 속에서도 지킨 도리
결혼 후, 첫아들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아버님의 어머님, 그러니까 시할머니께서 집으로 들어오셨다.
치매를 앓고 계셨다.
장남의 집, 장남의 아내에게 당연하다는 듯
“당신이 모셔야지, 우리 엄마”라는 말이 건네졌고,
어머님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것이 맏며느리의 도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시할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이 달라졌다.
어린아이처럼 웃다가도 이내 호통을 치고,
또 어떤 날은 멍하니 앉아 계셨다.
그런 시할머니를 어머님은 매일 새로이 맞이했다.
변덕과 불신, 오해 속에서도 힘들다 말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식탁에 마주 앉은 시할머니를 보며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한 적이 있다.
숟가락을 들기 전, 두 손을 꼭 모으고
작은 목소리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셨다.
치매로 많은 기억을 잃었는데도,
그 기도만큼은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읊조리셨다.
그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참 사랑스럽기도 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자기만의 비밀 주문을 외우듯,
눈을 감고, 그리고 “아멘”으로 마무리하시는 시할머니의 미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시할머니는 또 늘 배가 고프다고 하셨다.
아버님이 퇴근하고 집에 오시면
방으로 불러 어머님을 흉보셨다.
“저년이 나 밥도 안 주더라. 배고파 죽겠다.”
그 말만 들은 아버님은 “밥 드려라” 하셨고,
어머님은 이미 차린 밥을 또 새로 지어 상에 올렸다.
그러나 어머님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았다.
계절마다 새 옷을 입히고, 머리를 단정히 빗겨드리고,
목욕 후엔 손수 로션을 발라 피부가 트지 않게 살폈다.
치매를 앓는 어르신 중 가장 단정하고 곱게,
시할머니를 모셨다.
그 3년의 세월 동안
가장 잊히지 않는 장면은 비 오는 날이었다.
시할머니는 빗소리를 들으면 갑자기 현관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가셨다.
그럴 때마다 남편이 우산을 들고
젖은 골목과 버스정류장을 뛰어다니며 할머니를 찾았다.
그리고 한참 뒤,
비에 젖은 우산 아래에서 남편의 등에
아기처럼 업혀 돌아오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등에 기대어 졸고 있는 할머니,
그 어깨를 감싸 쥔 남편의 두 손은
비에 젖었지만 참 따뜻해 보였다.
간병이 길어지며 어머님의 건강에 무리가 오자
아버님 형제들이 한 주씩 돌아가며 시할머니를 모셔갔지만,
결국 다시 어머님께로 돌아왔다.
마지막까지도 어머님의 몫이었다.
이상하리만큼 아버님 형제들은
시할머니의 치매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돌아가신 후에도 공식적으로는 언급하지 않았다.
장례를 준비하던 염습의 날,
염을 하던 분이 감탄했다.
“어디서 이렇게 잘 모셨느냐, 참 곱다.”
그리고 장례 절차 중 우리에게 당부했다.
“절대 울지 마십시오.
이 어르신은 정말 행복한 미소로 천국에 가셨습니다.
이 집 며느리한테 잘하셔야 합니다.”
그 말은 어머님이 지난 3년 동안 감당한
사랑과 책임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찬사였다.
어머님은 그렇게 시할머니를 정성으로 천국까지 모셔드렸다.
그리고 그 이후,
오랜 세월 돌봄의 무게를 짊어진 어머님의 몸이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내 할 일은 다 했다”는 안도감 뒤에,
이미 한참 전부터 무너지고 있던 자신의 몸을
그제야 깨닫게 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