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

돌아보면, 다 시댁 먼저였던 나날들

by 지숙수담

5화. 돌아보면, 다 시댁 먼저였던 나날들


우리 집은 대가족이었다.

아버님은 10남매의 장남,

그래서 명절이면 늘 우리 집이 중심이 되었다.

아버님의 형제자매, 그 배우자들, 조카들까지…

거실이며 방 안이며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아버님은 형제들이 자신의 집에 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당연히 ‘큰집이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없는 살림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대가족의 법도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 고지식함 속에서 남은 모든 일과 책임은

고스란히 어머님의 몫이 되었다.

그건 어머님이 홀로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이기도 했다.


그날만큼은 집 안이 작은 마을이 된 듯했고,

나는 며느리로서 그 안에서 조용히 일손을 보태야 했다

상 차리고, 상 걷고, 설거지하고, 또 음식을 만들고…

그 반복 속에서 허리와 다리는 물론,

마음까지 무거워졌던 기억이 난다.


2층집으로 친척들이 모여드는 명절이면

나는 힘들었다기보다, 솔직히 ‘무서웠다.’

그 많은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소극적인 내가 설 자리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쉴 틈도, 숨 돌릴 틈도 없이

어색함과 긴장 속에서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술상은 빠지지 않았고,

음식은 ‘바리바리’ 넉넉하게 준비되어야 했다.

어머님은 몇 달 전부터 냉장고와 냉동실을 점검하며

음식 재료들을 하나둘씩 미리 준비하셨다.

특히 아버님은 겉절이처럼 ‘방금 한 김치’를 좋아하셔서, 명절 아침이면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양념을 버무리고 배추를 절이고, 장독을 들여다보며

정확한 타이밍을 맞춰 겉절이를 내놓으셨다.


나는 명절에 어머님이 앉아 쉬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늘 부지런히 움직이셨고, 손끝은 바빴으며, 표정은 단단했다.

그 모습은 지쳐 보이기보다, 오히려 스스로를 다잡는 듯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굳은 믿음이

어머님의 어깨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절, 어머님은 당신 자식보다 시댁을 먼저 챙겨야 했던 맏며느리였고, 나는 그런 어머님의 등을 보며

‘가족보다 시댁이 먼저였던 시간들’이

당연했던 시절을 배워야 했다.


그리고 명절이 끝나면

집 안에는 음식 냄새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북적이던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산더미 같은 설거지와 빈 그릇,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이 남았다.

그 고요함 속에서 어머님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가셨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헛헛함을 삼키고 살아내는 일이

어머님에게 얼마나 큰 힘이 필요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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