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에서 피어난 꽃
4화. 그늘에서 피어난 꽃
고모가 어머님 곁을 지키고 있는 지금,
나는 종종 생각한다.
어머님은 평생을 ‘그늘’ 속에서 사신 분이었다고.
남편의 그늘, 시대의 그늘,
그리고 맏며느리라는 이름 아래 생긴
수많은 기대와 의무의 그늘.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그늘 속에서 어머님은 더 곱게 피어났다.
부드럽고도 단단한 사람,
아무리 흔들려도 끝내 부러지지 않는 사람.
어머님의 취미는 화초 가꾸기였다.
결혼 전부터 어머님 댁은 깨끗하고 단정했다.
하얀색을 유난히 좋아하셨고,
그 집 안은 마치 햇빛이 스며든 듯 맑고 정갈했다.
창가에는 늘 반듯이 정리된 화분이 놓여 있었고,
잎사귀 하나에도 먼지가 쌓이지 않게 손질하셨다.
그 정성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도 닮아 있었다.
그 집에는 ‘초롱이’라는 작은 말티즈 강아지가 있었다.
눈처럼 하얀 털에, 늘 좋은 냄새가 나고
발톱과 털 관리까지 완벽하게 된 강아지였다.
어머님은 초롱이를 친구처럼 대했고,
말벗이 되어주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초롱이는 나에게도 ‘친구’였다.
결혼해서 처음 맞이한 임신 시절,
쏟아지는 잠을 참지 못하고 방에 누우면
초롱이가 슬며시 들어와
내 옆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함께 낮잠을 잤다.
그때마다 어머님은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오셔서
얇은 이불을 나와 초롱이에게 덮어주시곤 했다.
그리고는 발소리조차 죽인 채 부엌으로 가셔서
저녁거리를 준비하셨다.
어머님의 손맛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못하시는 음식이 없었고,
손이 크셔서 늘 넉넉히 만들어 이웃과 나누셨다.
아침상에는 구수한 된장찌개와 갓 부친 달걀이,
저녁상에는 반질반질 윤이 나는 생선구이와
색색의 나물들이 올랐다.
음식 하나에도 정성과 사랑이 묻어 있었다.
그러다 내가 첫 아이를 낳을 즈음,
어머님은 초롱이를 이모님 댁으로 보내셨다.
“아기한테 좋지 않을 것 같아서…”
그 한마디 뒤에는
자신이 아끼던 것마저 기꺼이 내려놓을 줄 아는
어머님의 마음이 숨어 있었다.
그날, 초롱이를 차에 태우고 보내는 순간
어머님은 한참 동안 그 작은 몸을 품에 안고
떠나지 못하셨다.
차창 너머로 초롱이의 하얀 얼굴이 사라질 때까지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그건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함께한 ‘말없는 위로’와의 작별이었다.
그 후로 어머님 댁 창가에는
더 많은 화초들이 놓였다.
새로 들여온 초록 잎과 작은 꽃송이들이
마치 초롱이가 남기고 간 빈자리를
조용히 메워주는 듯했다.
어머님의 삶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 안엔
수많은 색과 결이 숨어 있었다.
그 색들은 화려함 대신 깊이를,
그 결은 상처 대신 단단함을 남겼다.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늘 속에서 피어난 꽃은,
햇빛만 받은 꽃보다 오래 향기롭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