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

시간 속에서 마주한 진실

by 지숙수담

10장

요양원 생활이 시작되면서, 모든 가족이 조금씩 무너져갔다.

남편과 나는 번아웃을 겪었고, 같은 시기 시누이는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아버님에겐 말 못 할 외로움이 찾아왔다. 아내를 요양원에 보낸 뒤, 무릎 꿇고 기도하시던 아버님의 하루는 점점 말수가 줄고, 쓸쓸함과 우울함으로 채워져 갔다.


우리는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아버님이 외출할 수 있도록 친척 분들을 만나게 해드리고, 교회 예배를 통해 믿음으로 견디시길 권했다. 적적함을 달래시라고 작은 강아지도 분양해드렸다. 하지만, 어머님의 빈자리를 대신할 무언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삶이 흐트러졌고, 일상이 엉망처럼 흩어졌다.


특별한 날이면 어김없이 아버님은 어머님을 모시고 오라 하셨다.

생신, 명절, 신년… 그때마다 어머님은 집으로 오셨다. 짧게는 1박 2일, 길게는 3박 4일.


하지만 문제는 늘 그다음이었다.

“그냥 여기 있을래.”

“나 안 갈래…”

어머님은 눈물로 매달리셨고, 약속은 번번이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요양원으로 돌아가실 땐 강제로 모셔가야 했고, 어느 날 시누는 아버님 몰래 요양원과 직접 연락해 어머님을 모셔갔다.


그 일로 아버님은 자식들을 향해 분노하셨다.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셨다. 자식들은 말이 없었고, 남편은 누나에게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니를 그런 식으로 대해선 안 된다고. 하지만 그런 상황은 두 번 더 반복되었고, 어머니는 그 모든 날들을 기억하고 계셨다. 우리의 작은 거짓말, 무심한 말투, 조급했던 행동까지.


우리는 어머니가 그 기억만큼은 놓아주시길 바랐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또렷한 기억으로 우리를 기억하고 계셨다. 그래서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생신이 다가올 때마다 마음은 무거워졌다. 기다림도, 만남도, 이별도… 모두가 진이 빠지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남편에게 어머니는 늘 완벽한 분이셨다.

정갈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고운 한복 차림에 누구보다 먼저 교회에 도착해 앞자리에 앉아 묵묵히 기도하시던 분. 언제나 깔끔하시고, 침착하시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품위를 지키셨던 분. 그러나 그 단단함 아래에는 지우고 덮어두신 슬픔과 외로움이 있었다는 것을, 남편은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불쌍하리만큼 여자로서의 삶은 포기하고, 어머니는 늘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의 중심이 되셨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고, 늘 ‘엄마’이기 전에 ‘가장’이 되어야 했던 세월. 그런 어머니가 병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남편은 견딜 수 없었다.


“궁평항에 갔던 날… 엄마는 회보다 내 지갑 사정을 먼저 걱정하셨어.”

“괜찮다고 해도 자꾸만 메뉴를 바꾸시고, 결국 본인은 거의 안 드셨지…”


남편은 그 기억을 이야기하다가 고개를 떨궜다. 요양원 문 앞에 앉아 하루 종일 나올 수 없는 문만 바라보시던 어머니, 그 모습이 자꾸 떠올라 마음을 놓지 못한다고 했다. 단단했던 어머니가 점점 잊혀가는 것들을 붙잡으려 눈빛으로 애쓰고 계신 지금이, 어쩌면 더 큰 고통일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아직… 엄마를 놓을 준비가 안 됐어.”

남편의 말은 끝내 흐느낌으로 이어졌다.


‘권사님’, ‘장로님 사모님’, ‘누구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엄마. 한 남자의 단 하나뿐인 엄마로 기억되고 싶은 그 마음. 남편은 마침내 고개를 들어, 오래 묻어둔 고백을 내뱉었다.


“이제야 진심으로 말할 수 있어요.

엄마, 정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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