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잇는 하루
11장-비워진 자리를, 사랑으로 채우며
한여름, 결혼 전 처음으로 남편의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갔던 날이 아직도 선하다.
어머님은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팔을 걷어붙인 채, 포도알을 하나하나 닦아 통에 담고 계셨다.
그렇게 포도주를 담그고 계셨는데, 내 눈에는 그 모습이 낯설고 조금은 무서웠다.
그런데 어머님은 누구보다 밝은 얼굴로, “어서 와라” 하며 웃어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미소 하나가 전부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날부터 어머님은 내 결혼의 시작을 함께 준비해 주셨다.
혼수 장만을 위해 발품을 팔아 가구점을 직접 다니며 하나하나 고르게 하셨고,
멀리 계신 친정엄마의 빈자리를 그 손길로 채워주셨다.
신혼여행 준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해주마” 하시던 친정 작은아버지의 약속은 결혼 날짜가 다가오자 감감무소식으로 사라졌다.
그때 어머님은 서운해할 틈도 없이 부랴부랴 제주도로 일정을 잡아주시며
“괜찮다, 네가 잘 살면 된다”며 오히려 위로해 주셨다.
임신을 했을 때도 어머님의 손길은 늘 곁에 있었다.
나는 입덧이 유난히 심했는데, 신기하게도 뼈다귀 감자탕만은 먹을 수 있었다.
마침 남편의 작은아버님이 감자탕 회사를 운영하고 계셨다.
어머님은 매번 작은집에 부탁해, 내가 하루 세끼 감자탕을 먹을 수 있게 챙겨주셨다.
그 덕분에 내 첫아이의 태교는 ‘감자탕 태교’라 불릴 만큼 감자탕으로 채워졌다.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고, 그 안에서 느껴진 어머님의 세심한 사랑이 마음을 울린다.
결혼 후 세 아들의 산후조리도 어머님이 손수 해주셨다.
친정이 멀고, 친정엄마는 장사로 늘 바빴기에
어머님은 아무 말씀 없이, 기쁘게, 따뜻하게 나를 도우셨다.
그 모든 순간이 지금도 하나하나 선명하다.
어머님은 우리 아이들을 참 예뻐하셨다.
첫 손주였던 큰아들은 특히나 넘치는 사랑으로 키워주셨다.
아들을 안고 업으며 정성을 쏟던 그 사랑은 손주의 마음에 깊이 심어졌다.
이제 그 아이가 벌써 스물네 살이 되었고, 작업치료를 전공하며 졸업반을 앞두고 있다.
아들은 늘 말한다. “할머니의 다리가 되어드리고 싶다”라고.
요양원에서도 그는 할머니 곁에 앉아 안마를 해드리고, 작은 손길로 살뜰하게 챙긴다.
어머님께서 손주에게 흘려보내주신 사랑이 이제 되돌아와, 또 다른 헌신의 모습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친정에서 보낸 시간보다 어머님과 함께한 세월이 훨씬 더 많다.
이젠 친정엄마의 김치보다 어머님 손맛이 더 익숙하고, 더 맛있다.
그런 내가 가끔 철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진심으로 마음이 간다.
누구보다 날 예뻐해 주시고, 누구보다 잘 살 거라고 늘 믿어주셨던 나의 엄마.
지금 나는 그 기억들 위에서 하루를 살아간다.
비워진 자리에 어머님의 손길과 기억이 남아 있고,
그 기억 덕분에 나는 여전히 따뜻한 하루를 지켜가고 있다.
엄마, 저는 오늘도 엄마의 기억 위에서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 기억이 제 삶을 단단히 붙들고,
앞으로도 저를 살아가게 할 힘이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