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남은 이야기
12장-당신을 보내지 않는 우리의 방식
어머님이 요양원에 계신 지도 벌써 1년 반이 흘렀다. 그 사이 아버님은 눈에 띄게 야위셨고, 화가 많아지셨으며, 성격마저 변해버리셨다. 강직했던 모습은 남아 있었지만, 그 안에는 외로움과 불안이 깊이 자리 잡았다.
아버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너희 엄마를 당장 집으로 데려와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집을 나가겠다. 법적인 절차를 밟겠다. 내 형제들을 불러서라도 집으로 데려오겠다." 협박처럼 들리는 말이 매일 이어졌다.
남편은 그때마다 애써 이성적으로 대답했다.
"저도 일을 하는 사람이고, 가정도 있습니다. 엄마는 지금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시고, 집에서 아버지가 혼자 케어하시는 건 불가능합니다. 식사 준비며 목욕, 재활치료까지.... 어떻게 다 감당하시려고요? 왜 자꾸 저에게만 책임을 전가하십니까. 엄마를 집으로 모셔올 때마다 제가 다 했던 거 아시잖아요. 기저귀도, 씻기는 것도, 식사 챙기는 것도 전부 제 몫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옆에 두고 싶으신 거겠지만, 저도 이제 너무 힘듭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듭니다."
그토록 효심 깊던 아들이 울며 소리치는 단계까지 와버렸다. 누구보다 어머님을 지키고 싶었던 아들이었기에, 그 절규는 더 깊은 상처로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님의 바로 밑 동생, 남편의 작은아버지가 치매 진단을 받으셨다. 이미 주변 사람을 전혀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중상위 단계까지 진행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다.
아버님은 충격을 받은 듯 보였지만, 오히려 그 일을 빌미로 더 강하게 주장하셨다.
"너희 엄마는 정상이야. 그 동생을 보아라. 그게 치매지. 너희 엄마는 멀쩡하다."
그러나 우리는 알았다. 어머님의 상태는 이미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고, 단지 아버님만이 받아들이지 않고 계실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병원을 다시 찾았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다른 병원과 다른 전문의를 찾아가 수차례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알츠하이머성 치매.
어머님의 정확한 진단명은 번번이 동일했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아버님은 끝내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셨다
체면과 고집, 그리고 아내를 향한 부정과 두려움이 한데 얽혀, 아버님은 "정상이다"라는 말만 붙들고 계셨다.
친인척들과 주변 사람들은 곧장 뒷말을 내놓았다.
"인지력이 또렷하신데 왜 요양원에 모셨냐. 자식이 둘이나 있고, 며느리와 사위도 있는데 왜 집에서 모시지 않느냐." 그 말들은 우리 가족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물론 우리도 알고 있었다.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우리 역시 모시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했고, 각자의 가정을 지켜야 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병원비와 약값도 감당해야 했다. 무엇보다 아버님 곁에 계실 때 어머님은 더 다치고, 더 악화되셨다. 반면 요양원에서는 오히려 체중이 늘고, 잠도 편히 주무셨고, 안전하게 보호받으셨다.
그럼에도 아버님은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셨다.
곁에 두고 싶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그 방식은 언제나 일방적이고 즉흥적이었다. 대화는 소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우리는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어머님을 지키려는 마음과, 아버님의 체면과 고집, 그리고 각자의 삶 사이에서
이것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우리가 어머님을 보내지 않는 방식이었다.
"나는 지금도 엄마를 지키고 싶다.
하지만 왜 우리 가족은 진실 앞에서 더 힘들어야만 할까?”남편은 오늘도 숨죽여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