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까지 출석합니다.

내 첫 마음의 제자

by 지숙수담

6화

3월 중순, 이미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리를 잡은 시기에 보름쯤 늦게 들어온 한 아이가 있었다. 영아반에서 막 유아반으로 넘어왔지만, 여전히 영아에 가까운 작은 아이였다. 얼굴에는 크고 선명한 멍이 남아 있었고, 낯선 공간과 낯선 사람들 속에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손길을 거부했고, 말 대신 벽지를 찢거나 놀잇감을 던지며 마음을 표현했다. 때로는 침을 뱉거나 발로 차며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다. 늘어진 옷은 해져 있었고, 눈을 덮은 머리카락은 제때 자르지 못해 수북이 자라 있었다 씻지 못한 꼬질함이 온몸에 묻어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그동안의 시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아이는 타 지역에서 아동학대 피해로 신고된 후, 엄마와 함께 이사와 임대아파트에서 지내게 되었다. 삼 남매 중 막내였던 아이는 누나와 함께 엄마와 살았지만, 형은 아빠와 따로 지냈다. 가족의 사정은 복잡했고, 엄마는 매일 식당으로 뛰어가듯 아이를 어린이집 문 앞에 밀어 넣고 씩씩거리듯 화를 삼키며 갔다. 아빠는 1년에 한두 번 얼굴을 볼 뿐이었다. 가족이지만 가족 같아 보이지 않아 안타까웠다.


처음 아이의 교실 생활은 고통 그 자체였다. 말 대신 행동으로 마음을 표현했고, 화를 주체하지 못하면 옷을 하나씩 벗어던졌다. 욕설을 퍼붓다 결국 속옷만 남은 채 교사와 친구들에게 속옷마저 던지며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어린이집은 그 아이에게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고, 교사 또한 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 아이의 눈엔 모든 사람들이 괴물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자신을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교사들과 회의를 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며, 내가 배운 모든 지식과 상호작용의 방법을 총동원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여기서는 안전하다’는 걸 느끼도록, “나는 네 편이야”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전하려 했다. 매일 눈에 띄는 변화가 있지는 않았지만, 아주 작은 기적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내 손을 뿌리치던 아이가 어느 날은 힘없이 내 품에 기댔고,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까 말까 고민하는 듯하다가 또 가끔은 친구들이 놀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피식 웃기도 하다 결국에는 웃음을 보이며 서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2년이 흘렀다. 아이는 처음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웃음을 지었고, 말을 통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으며, 또래와 어울려 뛰어노는 여유까지 생겼다. 무엇보다 스스로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머님 또한 변했다. 처음에는 원을 믿지 못하고 교사의 책임을 탓하며 화를 내곤 했지만, 차츰 아이와 함께 치료를 이어가며 아이들의 삶을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내 손에 한 통의 편지를 쥐여주셨다.


“고맙습니다. 제 아이를 지켜보시고, 이렇게 키워주시고, 웃을 수 있게 해 주셔서요.”


그 편지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 아이는 내게 단순한 제자가 아니었다. 내 첫 마음의 제자였다. 그 아이와의 만남은 내가 왜 교사가 되어야 하는지, 왜 더 공부해야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워준 계기였다. 지금 내가 걸어가는 길, ‘부적응 유아의 마음을 읽고 돕는 일’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 아이가 있다.


그리고 나는 다짐한다.

“앞으로도 또 다른 마음의 제자들을 만나, 그들의 손을 꼭 잡아줄 수 있는 교사가 되고야 말겠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