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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복수 Oct 06. 2024

열 살 아들, 마흔 살 아빠 그리고 일흔 아버지

아빠는 말이 안 통해 

-마흔 살 아들-

마흔인 나는 일흔인 아버지와 가끔 밥을 먹는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을 앞에 두고 아버지가 하는 이야기는 스토리가 뻔하다. 잘 차려진 밥상 앞에서 밥을 뜰 때는 제일 먼저 '정치 이야기'가 나온다. 밥맛이 떨어진다. 다음은 식탁의 메인 메뉴 앞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환경/자연 이야기'로 넘어가더니 커피나 과일 등의 후식을 먹을 때에는 '역사 이야기'로 마무리 짓게 된다. 매번 뻔하고 또 지겨운 이야기들. 마흔 살 나는 속으로 이야기한다. 


'아빠는 말이 안 통해, 그냥 듣는 척이나 하자.'


하지만 40년 가까이 듣는 척하는 것도 이젠 쉽지 않다. 같은 자리에서 엄마와 나는 그냥 딴청을 피우거나 다른 방향을 보거나 묵묵히 밥을 먹으며 고개만 끄덕인다. 추임새라던가 질문은 일절 없다. 이야기가 더 길어지기 때문이다.



-열 살 아들-

열 살인 나는 궁금한 것이 많다. 특히 차를 타고 가면 신기한것들이 많이 보이는데 어른들은 궁금한 것이 생기면 바로 물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마흔 살 아빠에게 질문을 한다. 그런데 아빠는 항상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닌 엉뚱한 대답을 한다. 내가 하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다. 속상하다. 심지어 거기다 딴소리를 덧붙인다. 알고싶지 않은 '한자의 뜻'이라던지, 관련된 '이야기'라던지, 앞으로 내가 '할 일', 그리고 '나의 다짐'을 오히려 나에게 묻는다. 열 살인 나는 기분이 나쁘다. 아빠에게 큰소리로 고함을 친다. 고함을 쳐야 아빠는 겨우 정신을 차리기 때문이다.


"아빠는 말이 안 통해, 앞으로 절대 묻지 않을 거야!"


내가 이런 식으로 나가야 아빠는 다음에 내 질문에 답을 제대로 해줄 것이다. 창 밖으로는 재미있는 질문거리가 넘쳐나는데 매번 아빠는 정신없이 운전만 한다. 운전에 집중을 해야 한다는데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운전하면서 핸드폰을 보는 아빠는 뭔가? 앞으로 질문은 물론 뽀뽀도 해주지 않을 것이고, 주말에 공도 절대 차주지 않을 거고, 잠도 같이 안 잘 거다. 도대체 언제쯤 아빠는 내 질문을 이해할까. 



-마흔 살 아빠-

마흔 살 아빠는 억울하다. 나는 운전을 해야 하는데 지가 뒷좌석 창밖에서 보고 생각한 것을 갑자기 물으니 질문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고, 그나마 아는 답을 대충 얼버무려 대답해 줬더니 원하는 답이 아니란다. 당연한 결과다. 열 살 아들은 달을 가리키지만, 나는 손가락만 열심히 이야기하는 격이다.



-아빠 둘-

말 안 통하는 마흔 살 아빠와 일흔 살 아빠는 섭섭하다. 하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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