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아이들은

아이들과 처음 방문한 스키장에서..

by 고복수

스키, 4인구성 가족에 나만 스키를 탈 줄 안다는 것은.. 스키장에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초등 1학년 아들과 3학년 딸은 그저 눈을 본다는것에 신났고 나와 와이프는 잠시 콧바람 쐰다는 생각으로 안일하게 집을 나섰다.


한가지 확실한건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가족이 스키를 즐길지 말지에 대해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화려한 옷과 비싼 장비는 일체 필요없다. 두꺼운 양말과 넥워머 및 장갑은 다이소에서 구입했고 스키복과 장비는 렌탈샵에서 빌렸다. 맛만 볼 셈이니 숙소는 잡지않고 당일치기로 4시간 리프트권을 구입했다. 준비는 생각보다 간단했고 마음은 설랬다.


- 눈덮힌 넓은 세상을 실컷 보여줘야지

- 아빠의 멋진 모습도 자랑해야지

- 바람을 가르며 미끄러지는 재미를 알려줘야지


하지만 주말이라 장비 픽업은 스키장 입구에서 이루어지지 못했다. 부츠 4개는 내가 들었지만 개인별 스키는 각자 어깨에 둘러매고 낑낑거리며 스키장을 올라갈 때부터 불안했다. 입구에서는 다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줄을 섰고 뒤에 있던 커플에게 코스를 물었다. 아기와 함께 앞에 서 있던 아빠에게도 제차 물었다.


- 여기가 처음이라 잘 모릅니다. 초보코스 맞나요?


다들 다 맞다고 했다. 올라가보니 초보자 코스가 맞았다. 후회했다. "여기가 왕초보코스가 맞나요?" 라고 물어야했다. 코스 입구는 산 중턱이었고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아래 골짜기가 무서웠다.(아이들은 나보다 더 겁이났을 것이다.) 여튼 나는.. 눈덮힌 넓은 세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긴 했다.


긴장하다보니 배가 고플새도 없었는데 배고프면 기분나쁜 아들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는것도 그때 알았다. 아들은 내려가고 싶다고 투덜거리고 와이프는 아무리 가르쳐줘도 스키를 발에 끼우지 못했다. 딸아이는 자꾸 넘어지며 "이럴꺼면 왜 왔냐"고 날카롭게 투덜거렸다. 4인 구성 가족은 모두 풀썩 주저 않아버렸다.


먼지 대신 눈바람과 아이들 잔소리만 날렸다.


- 여보, 한결이랑 같이 리프트타고 다시 내려가. 난 윤아랑 조금만 쉬었다가 내려가 볼게..


딸아이가 그나마 따라왔다. 다리를 에이자로 잡고 손을 끌어주니 조금씩 미끄러지며 당겨왔다. 오미터 옆으로 미끄러지고 안아 일으켜 방향을 바꾸고 다시 반대로 오미터 전진했다. 위에서 기다리던 아들이 볼멘소리로 말했다. "아빠는 날 데리러 오라"고 "누나는 하는데 나는 왜 안가르쳐 주냐"고..


허벅지가 터질것 같았다. 딸아이 5미터 내려주고 다시 올라가서 아들 잡아 끌어주고, 다시 올라가서 와이프 손을 잡아 끌고 내려왔다. 마지막으로 널부러진 내 스키와 4명 분의 폴대를 안고 내려왔다. 같은 거리를 3인은 한번씩 내려왔지만 난 4번을 올라갔다 내려왔다. 제길, 이럴줄은 몰랐다.


그렇게 4인가족은 조금씩 내려왔다. 가끔 스노우 바이크에 실려 내려가는 환자들을 보고 아이들은 무섭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말없이 견디고 따라왔다. 그냥 걸어 내려가자는 말에 끝까지 해보겠다는 딸아이가 대견했다. 오른발에 힘을 줄 때와 왼발에 힘을 줄 때를 가르쳐주니 몸으로 익혔고 점점 눈 위에서 스키가 미끄러졌다. 안아서 방향을 돌려주고 무릎을 꿇고 손을 잡아서 돌려주던 스키는 점차 지내들 허리로, 감각으로 돌려나갔다.


- 아빠! 여기봐!


어느순간 윤아가 오른쪽으로 돌아 나가고 있었다. 넘어지지 않고 웃고 있었다. 눈 위에서 바람을 가르며 놀고 있었다.


- 와우! 윤아야! 최고다 최고!


핸드폰을 잡고 정신없이 영상을 찍으며 고함을 질렀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가르쳤다고! 내가 넘어지던 윤아를 일으켜 세웠다고! 내가 드디어 스키타는 재미를 알려줬다고! 이제 익혔으니 앞으로 다 배웠다고 고함을 더 지르고 싶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스키를 타고 나에게 다가오는 딸아이를 있는 힘껏 안아줬다.

아들도 조금씩 방향을 잡아갔다. 일어서지 못하겠다며 낑낑대는 마누라는 재미있다며 벌써 혼자 내려가고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5분만에 내려올 코스를 3시간에 걸쳐 기듯이 내려왔다. 딸아이가 이야기했다.


- 아빠 고마워.


생각보다 아이들은.. 그렇게 또 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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