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고객일까? 내가 절로 을이 되는 곳 병원

암에 걸린 엄마 vs 갑상선이 나쁜 아내

by 고복수

#1

엄마가 암에 걸렸다. 아니, 몸에 있던 암을 운 좋게 찾았다. 우리 몸에는 숙주도 모르는 암세포가 수없이 돌아다니는데 유독 약한 부위에 녀석들이 들러붙어 증식을 한다고 한다. 엄마의 경우는 가슴이었다.


인간 몸에 있는 세포들은 성장기를 지나면 더 이상 증식하거나 자라지 않고 점차 늙고 없어지는 것이 흐름인데 유독 암세포만은 계속해서 자란다고 한다. 이 놈들은 기존 장기들의 정상적인 활동을 막고 숙주를 괴롭히면서 자신은 한없이 자란다. 결국 숙주가 없어지면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모른 체 말이다.


예전에는 무조건 절개하고 뜯어내고 사전에 싹을 없애버리는 것이 방법이었다면 요즘은 암세포만 예쁘게 도려낸다. 도려낸, 주인 잃은 암을 분석하여 그에 맞는 추가적인 진료를 더한다. 항암과 표적치료를 할지 말지, 호르몬 치료와 방사선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겪어본 사람만 안다. 돌아보면 하룻밤 꿈인가 싶은 의사의 첫 한마디, 거기에 따른 수많은 검사들과 하염없는 기다림, 하루에도 몇 번이나 아니, 수만 번 오르내리는 마음, 차라리 치료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그렇게 암은 몸을 떠나도 숙주를 괴롭혔다.


아들인 나는 어찌 보면 제삼자까지는 아니고 일쩜오자(?) 혹은 이자쯤 될 것이다. 어찌 엄마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조금이나마 엄마와 동일한 마음을 느꼈다면, 그녀의 기분을 이해한 구석이 있었다면.. 바로 병원의 태도였다. 나는 엄마와 여러 병원을 다니면서 이런 말을 자주 했다.


- 엄마, 그래도 병원이 참 친절하지요?


그냥 한 말이었다. 반대로 말했다. 병원이 불친절하더라, 의사 선생님이 퉁명스럽더라, 궁금한 게 있었는데 물어보지 못했다, 걱정이다. 이런 말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 애가 타고 걱정이 되는 엄마의 마음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기분은 여전히 나빴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위해 고개 숙여 인사하고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 네.. 선생님 어떻게든 잘 부탁드립니다.


전문직이라는 것,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도통 넘겨다 볼 수 없는 그들만의 벽이 너무 높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속은 타지만 웃으며 90도로 인사를 하고 나왔다. 문을 닫고 나오며 생각했다. 엄마의 남은 시간을 처음 보는 그에게 맡긴다는 것이 정말 합당할까?


의사는 5분의 진료시간을 할당할 뿐이지만 환자는 5분을 5시간으로 늘린다.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 문 앞에 잠시 서서 인기척을 느낀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최대한 정중하게 노크를 한다. 들어오라는 멘트는 정확히 귀에 들리지 않지만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의사의 눈높이와 90도로 인사하는 나의 눈높이가 딱 맞다. 의사의 짧은 인사와 나의 긴 인사가 함께 어울린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매번 5시간을 보냈다. 선생님의 표정, 느낌, 뉘앙스 그리고 심지어 작은 한숨까지도 나와 엄마는 포착했다. 동물적인 감각은 이미 암세포를 잡아먹었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매번 진이 빠졌다. 엄마한테 이야기했다.


- 엄마.. 의사는 알까?




#2

집사람의 갑상선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유명하다는 동네 병원을 찾았다. 허름하기 짝이 없고 산만하다. 여기저기 붙은 상장들과 인증서, 그리고 각종 주사들을(?) 홍보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다시 불안하다. 마누라의 갑상선을 처음 보는 그에게 맡길 수 있을까? 합당한 것일까?


-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습니까?


진료실을 들어가자마자 깜짝 놀랐다. 우리는 엄마 병원을 찾듣 진료실에 한없이 작게 기어 들어갔는데 의사 선생님은 서 계셨다. 큰 키가 유독 더 눈에 띄었다. 90도로 우리를 보고 인사를 하시는데 그의 눈높이와 기어들어가는 우리 눈높이가 다시 한번 딱 맞다.


그는 고작 환자인 우리에게 아니, 집사람의 갑상선에게 5시간의 진료시간을 할애했고 우리는 5분으로 느끼고 나왔다. 집에 가서도 저녁 늦게 의사 선생님 전화가 왔다. 당일 진료는 어땠는지, 컨디션은 좋은지, 궁금한 것은 더 없는지..




#3

모든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예과 2년 본과 4년 고생의 산물인 졸업장을 들고, 빛나는 사회적 지위의 상징인 의사면허을 취득한 후 오른손을 들고 선서를 한다. 의사라는 직업을 만든 히포크라테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가 이야기하는 선서의 내용을 위키백과에서 몇가지 긁어왔다.


나는 의학의 신 아폴로와 아에스큘러피어스, 건강과 모든 치유, 모든 신들의 이름을 걸고 나의 능력과 판단으로 다음을 맹세하노라 ...(중략)...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의 이익이라 생각하는 섭생의 법칙을 지킬것이며 심신에 해를 주는 어떤것도 멀리하겠노라 ...(중략)... 나는 요청받느라하더라도 극약을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 것이며 청렴과 숭고함으로 나의 인생을, 나의 의술을 펼치겠노라 ...(중략)... 내가 어떠한 집에 들어가더라도 나는 병자의 이익을 위해 그들에게 갈 것이며 어떠한 해악이나 부패한 행위를 멀리할 것이며 남성혹은 여성, 시민혹은 노예의 유혹을 멀리할 것이다. ...(중략)... 하나 내가 이 맹세의 길을 벗어나거나 어긴다면 그 반대가 나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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