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윈스턴의 '캐논'을 들으며..
"아빠! 클래식은 지루하지가 않아!"
차 안에서 멍하니 있기 어색해 틀어둔 클래식을 듣고 딸아이가 말했다. 한창 예쁜 아이돌의 화려한 춤과 노래에 빠져있을 초등학교 3학년 여학생의 말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클래식을 대하는 태도만은 나보다 더 진지한 딸아이의 말이었다.
나는 클래식에 대해 잘 모른다. 잘 모르는데 그냥 듣는다. 사실 듣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처음 클래식을 듣기 시작한 것은 '책 읽기'라는 아주 간단한 이유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책을 읽다 보니 남들이 재미있다는 책을 찾아 읽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긴 시간,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누가 봐도 재미 하나로 검증된 '고전'이라는 책을 자주 보게 되었다. 그렇게 고전을 읽다 보니 누군가 음악에도 고전이 있다고 했다. 짧은 시간, 1, 2주 혹은 1, 2년 사람들이 듣고는 더 이상 찾지 않는.. 순위투표에 따라 바뀌는 인기가요 같은 노래가 아닌 수십 수백 년, 긴 시간 꾸준히 스테디셀러로 사랑받아온 음악, '클래식'이라는 것을 말이다.
클래식은 그렇게 단순히 '관심'을 두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기 전, 어두운 거실에서 헤드폰을 끼고 조지 윈스턴의 '캐논'을 듣는다. 나는 그렇게 내 뇌를 잔잔하게 깨우는 과정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빠짐없이 듣고 있는데 딸아이의 말과 같이 '캐논'은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고전의 힘이다.('캐논'은 유튜브 채널에 차고 넘치지만 다음 곡을 추천한다. 검색창에 아래와 같이 검색하면 뜨는 영상이다. 'kukemasa george winston canon')
https://www.youtube.com/watch?v=Rr0Ce7fLs1Q&list=RDRr0Ce7fLs1Q&start_radio=1
그렇게 클래식은 지겹지 않다. 들을 때마다 다르다. 앞서 추천한 유튜브 채널의 곡, 조지 윈스턴의 '캐논'을 살펴보자.
'캐논'의 시작 부분은 단순하다. 조지 윈스턴은 이 부분을 그의 늙고 긴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면서 시작한다. 시작은 조용하고 엄숙하지만 때론 경쾌하다. 반복되는 음이 나도 모르게 그 음을 중독성 있게 따라가면서도 다음 음은 쉽게 예측하기가 어렵다. 어떤 텍스트로 이 소리를 표현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다. 이제는 아쉽지도 않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곡은 높은 고음으로 이어진다. 마치 내가 어릴 때, 아무것도 모르는 20대. 세상모르던 내가 그저 시원하게 내리는 소나기에 웃통을 벗고 대학교 교정을 뛰어다니며 고함치던 모습과 같다. 그때는 정말 싱싱하고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앞날의 걱정조차 젊었다.
그렇게 곡은 초반에서 중반으로 다시 젊음과 늙음이 반복되는 듯하면서 결국은 흘러간다. 곡은 더 깊어진다. 젊음의 단순하고 반복되는 음에서 벗어나 이제는 조금 농익은 기교와 화려함이 조화롭게 이어진다. 그렇게 곡은 중년을 연주한다. '초연하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부분이다.(초연하다: 어떤 현실 속에서 벗어나 그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젓하다., 얼굴에 근심스러운 빛이 있다.) 이제 순수한 감동에 젖기는 약은 나이, 아쉽고 슬프다. 그렇게 곡은 초연하게 마지막으로 넘어간다.
니체는 사람을 세 가지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했다. 첫 번째로 무거운 짐을 지고 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죽어라 일만 하는 '낙타'의 시기, 두 번째 용맹하지만 실제적인 내가 없는 '사자'의 시기, 마지막으로 가장 긍정적인, 순수한 아이의 상태의 시기다. 니체는 결국 우리가 초인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순수한 긍정적인 아이의 상태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곡은 되돌아간다. 처음의 단순하면서도 경쾌한, 조지윈스턴이라는 이제는 세상에 없는 할아버지가 긴 손가락을 지그시 눌러 연주하던 첫 음, 누구나 다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할 수 있는 순수한 음, 아이의 상태로 말이다.
곡의 그렇게 자기 극복을 위한 마지막, 초인에 이른다. 아이를 표현하는 단순한 그의 왼손과 초연한 어른을 나타내는 오른손의 조합이 아름답다. 양손이 따로 노는 듯하다가도 결국은 함께 동화되어 곡을 이루어간다. 가끔은 아이가 사라지는 듯하다가도 어른에 이끌려 꾸준하게 곡은 이어진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잊지 않는 어른, 초인은 결국 그렇게 완성된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인간의 뇌는 내부에서 외부로 진화했다고 말했다. 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뇌간'에서는 심장박동, 반사작용, 호흡을 담당하고 뇌간의 상단을 모자처럼 덮고 있는 'R-영역'은 인간의 공격적 행위, 무리 짓기, 계층적 위계질서의 유지를 관장하는 부위라고 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엔 유독 '이 부위'가 강하게 나타나는 사람이 몇 있는데 사실 이 부위는 인간이 이전에 파충류였던 시기, 악어의 두뇌가 아직 인간의 뇌에 남아있는 것이다. 고로 그들은 진화가 더디거나 본능에 매우 충실한 족속들이라 생각하면 된다. 마치 악어와 같이..
다음, '변연계' 이 부위부터 포유류로 넘어간다. 변연계는 인간의 기분, 감정, 걱정 등의 정서적 반응과 자녀 보호의 본능을 지시하고 제어한다. 마지막 뇌의 마지막 겉 부분인 '대뇌피질'. 드디어 인간은 대뇌피질을 통해 '파충류'인 악어에서 '영장류'로 완벽하게 승격한다. 직관적 능력과 비판적 분석을 담당하는 곳으로 인간은 이곳에서 읽기와 쓰기, 수학적 추론이 가능하며 생각을 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글쓰기와 작곡이 가능하다. 한마디로 지금의 고전, 클래식, 조지 윈스턴의 '캐논'은 대뇌피질, 뇌의 고차원적인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클래식은 영장류의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작품이다. 지겨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