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할 근사한 이유라도/ 명희진
이제 막 9월이 시작됐을 뿐인데, 나는 습관적으로 신춘문예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 곧 장편이 나오니 그럴 필요가 없지 않은가, 생각하다가 그냥 다시 어딘가에 투고할 글을 쓰고 있다.
돌아보면 이 시기에 나는 항상 신춘문예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이를 출산하던 한 해를 제외하고 신춘문예에 보낼 소설을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는 시기를 보냈다.
등단을 원하는 작가들이라면 다들 그렇겠지만, 나는 12월이 너무 싫었다. 특히 결과 발표가 나는 크리스마스 즘에는, 크리스마스나 연말을 즐길 마음이 들지 않았다. 12월 23일까지는 결과를 기다리느라고. 그 이후부터 새해까지는 혹시 심사평에 내 이름이라도 올랐을까 봐서였다. 또 이게 희한한 게 최종심에도 못 오른 걸 보면 그렇게 속이 쓰리다. 그러면 당선작과 내 작품을 비교. 품평하기 시작한다. 그때는 차이를 모르고, 당선작이 당선작이 될 만큼 좋은지 모르겠다고 날뛰는데, 시간이 지나면 수긍하게 된다. 그 작품은 당선작이 될 숙명이었음을... 나의 무지에 부끄러움을 느낄 새도 없이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들 알겠지만, 나는 신춘문예 등단 작가가 아니다. 또 메이저 급 문예지 등단 작가도 아니다. 이게 참 아이러니 하지만, 한국에서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알 거다. 이 족쇄가 작가를 어떻게 나누는지. 지금은 독립출판도 많고 다른 형식의 글쓰기도 많지만, 여전히 등단은 작가들에게 숙제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각 잡고 제대로 쓰고 싶다.
2017년 아이를 가졌을 때, 루이를 가진 소식과 함께 동아일보 중편 최종심에 내 소설이 오른 걸 알았다. 그때가 처음으로 공식적인 루트로 내 소설의 평을 들을 수 있던 기회였다. 물론, 학교 합평을 제외하고 말이다.
은희경 소설가와 구효서 소설가가 최종심 심사위원이었는데, 그렇게라도 내 소설 평을 들을 수 있어 기뻤다. 그래도 내가 조금만 더 잘 썼다면 소설가로서 인생이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심사평을 여기 공개하는 건, 13년 전에 민중문학상의 심사평을 많은 사람들이 읽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민중문학상 신인상을 여기 공개한 건, 정말 순전히 내 소설을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서였다. 나 잘 쓰고 있다고, 그리고 계속 놓지 않고 쓰고 있었다는 간절함이었다.
지금도 나는 하루 최소 다섯 시간을 소설 쓰는데 할애한다. 다섯 시 간인건, 아이가 딱 다섯 시간 학교에 가 있기 때문이다. 그 외 시간에는 잡문을 쓰고 번역을 하고 글을 읽는다. 내내 책상에 앉아- 내 책상은 주방 식탁이다- 글을 놓지 않으려 애쓴다.
김종광 작가님이 말씀해 주신 순소설의 모범 같은 소설이라는 말이, 너무 좋았다. 그동안 내 수고가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이 단편은 스토리코스모스에서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