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는 건 진심 뿐

D-32

by 윤선


까미노 동반자 Mr. Lee, Mr. Seo @ 나 윤선


Larrasoana ~ Pampelune (15.9km)
06:40 ~ 12:30 (5시간 50분)



다시 동이 텄다.

이제 며칠 되었다고 짐 싸는 데 꽤나 능숙해졌다.



어제 담벼락에 널어 놓은 옷을 꺼내 입었다.

스페인의 뜨거운 햇살 덕분에 뽀송뽀송 잘 말랐다.




아저씨들도 길을 떠날 채비를 마쳤다.

우리는 그렇게 또 함께 길을 떠났다.



이른 아침 고기를 잡고 있는 할아버지 @ 나 윤선



한국에서는 단 한번도 새벽에 일어나본 적 없었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기 때문에, 아침까지 푹 자야 좋은 컨디션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까미노에 와서 새벽형 인간이 되었다.

새벽에 걷는게 이토록 행복한 것인지 이 곳에 와서야 깨닫게 되었다.



워밍업 하듯 한 발자국 씩 내딛다보면 어느새 밝아지는 하늘.

새벽 이슬에 촉촉히 젖은 풀 사이로 나는 흙냄새.

하루의 시작을 무엇보다 나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좋았다.



한국에 가면 이 새벽을 즐겨보겠노라고 다짐했다.



점점 밝아지는 하늘, 오늘은 도로 옆으로 걷는다 @ 나 윤선


이 쪽 길인가?

헷갈릴 때 쯤 늘 발견할 수 있는 가리비 표시.



우리 인생에도 나의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내 마음 속 소리를 따라가보면 어느 덧 산티아고 대성당과 같은 삶의 종착지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길을 걸으며 보이지 않는 나만의 화살표도 함께 찾아보자고 다짐했다.



산티아고로 가는 이정표(가리비) @ 나 윤선


도로를 벗어나 작은 산길을 따라 걸었다.

그렇게 걷다보니 작은 성당이 보였다. 이 곳에서 잠시 기도를 하며 쉬어가기로 했다.



까미노를 걷는 중에 이렇듯 작은 성당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순례자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이 곳에서 달랠 수 있는 감사한 곳이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작은 성당 @ 나 윤선


성당 내부에 종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그 곳을 따라 올라갔더니 작은 종이 보였다.



내가 혹시 종을 울려 누군가 시간을 헷갈리지는 않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종을 바라보기만 했다.



종 너머로 보이는 이 곳의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이어진 오솔길 같은 길 @ 나 윤선


성당을 나오니 나무 한 그루 찾기 힘든 오솔길 같은 길이 펼쳐진다.

아저씨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서로를 이끌어주며 함께 걸어본다.



저 멀리 먼저 길을 걷고 있는 Mr. Lee 아저씨 @ 나 윤선



Mr. Lee 아저씨는 나에게 스트레칭을 전수해주셨다.

나는 어렸을 때 부터 타고난 각목과 같은 몸을 갖고 있었다. 그만큼 유연하지 않고 뻣뻣하다는 소리이다.

체력장에서 윗 몸 앞으로 숙이기를 하면 측정기에도 손이 닿지 않아 “미측정”으로 최하점을 받곤 했다.

친구들은 내 다리가 길어서 그러는 거라고 말해주었지만, 나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다리가 긴 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길을 오랫동안 걸어야하니

체력 안배와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그렇게 나는 아저씨의 스트레칭 방법을 노트 한켠에 적기 시작하고 따라했다.

며칠 걷지 않았는데도 종아리가 뭉쳐서 아침마다 근육통에 힘들었었는데, 아저씨가 하라는대로 스트레칭을 통해 근육을 이완하니 통증이 훨씬 나아졌다.



그렇게 아저씨는 나에게 ‘힘을 뺴는 법’을 전수해주셨다.

나중에서야 생각해보니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삶의 기술이었다.



아저씨들과 함께 찰칵 @ 나 윤선



아쉽지만 아저씨들과 오늘 묵을 팜플로냐 까지만 함께 걷기로 했다.

아저씨들은 귀국일이 정해져있어서 서둘러 산티아고까지 가셔야 하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귀국편 비행 일정이 여유가 있어 이 길을 천천히 즐기며 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아침을 비롯 간식과 점심, 저녁까지 아저씨들이 내 몫까지 사주셨는데, 그 부분도 나에게는 감사하지만 작은 부담이었다.

아저씨들을 떠나 독립을 해야 진정한 나만의 까미노를 걸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저씨들은 그런 나의 의견을 존중해주셨고,

매번 얻어 먹어서 죄송하다고 감사하다는 나의 말에 ‘괜찮아. 첫 월급 타면 한턱 쏴’ 라며 쿨하게 말씀하셨다.



팜플로냐 가기 전 작은 마을 @ 나 윤선



팜플로냐에 거의 다 왔다.

생장에서부터 시작해 3일 만에 처음 본 대도시였다.

마치 시골쥐가 서울로 상경하듯, 갑자기 나타난 도시의 풍경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팜플로냐 들어가는 길 @ 나 윤선



팜플로냐에 가까워지자, 많은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저마다 각자의 이유로 길을 걷는 사람들.

갑자기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팜플로냐 시내 거리 @ 나 윤선



중세의 풍경을 간직한 팜플로냐는 너무나 예쁜 도시였다.

골목 골목을 걸으며 짐마다 제각기 단장한 테라스를 구경하는 것 또한 재밌었다.

얼른 무거운 배낭을 던져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 곳을 돌아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팜플로냐 알베르게 @ 나 윤선



대도시의 알베르게 또한 역시 스케일이 크다.

현대식 시설로 깔끔한 모습을 보고, ‘오늘은 뜨신 물에 샤워를 할 수 있겠군’ 이라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공용 주방도 있는 규모가 큰 알베르게였다.



오늘은 아저씨들과 장을 봐서 직접 요리를 해먹기로 했다.

메뉴는 파스타.



파스타를 요리해주는 이탈리안 친구 사이먼 @ 나 윤선



그런데 알베르게에서 우연히 이탈리아 청년 사이먼을 만났다.

알고보니 우리가 출발 할 때 즈음에 생장에서 같이 출발한 동지였다.

파스타 재료를 넉넉히 사왔기에, 알베르게에 있는 멕시코에서 온 아저씨와 독일에서 온 언니와 사이먼까지 함께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사이먼은 내가 이탈리안 파스타를 만들어주겠다고 직접 팔을 걷었다.

그가 알려준 파스타의 비법은 바로 양파였다.

양파를 잘 볶아야만 풍미가 살아난다나.




사이먼이 만들어준 파스타로 한 상 차리기 @ 나 윤선


바질 잎으로 예쁘게 데코레이션까지 마치고 와인과 물을 테이블에 놓으니 그럴 듯한 저녁 식사가 차려졌다.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저녁을 함께한 까미노 동지들 @ 나 윤선



내가 입고 있는 옷은 내가 이탈리아 H&M에서 3유로 주고 산 원피스 겸 나시이다.

짐이 될 것 같지 않은 옷을 고르다보니 저 옷을 골라 가지고 다녔는데, 지금에서 보니 너무 파였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나의 옷차림을 한국에서처럼 다른 사람들 시선을 신경쓰며 다니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의 옷을 쳐다보거나 지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몰랐던 걸 수도 있다.



사진으로 보기엔 조금 민망하기에 모자이크로 가려본다.



팜플로냐 대성당 @ 나 윤선


아저씨들과 함께 걸으며 배운 것이 있다.



길,

사람,

그리고 개그.



아저씨들은 힘든 순간에도 아재 개그를 하며 유쾌하게 웃어 넘겼다.

나의 개그 코드가 아재 개그였다는 것을 아저씨들 덕분에 처음 알게 되었지만, 지금껏 살아오며 힘든 순간을 이렇게 웃음으로 넘겼을 아저씨들의 삶의 지혜 또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늘 어린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셨다.

나의 의견을 하나하나 경청해주시고 존중해주시는 모습에서 나이, 공간, 시간을 초월한 ‘진심’을 느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결국 남은 건 진심이라는 것.

내가 두 분께 배운 삶의 진실이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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