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라지

D-31

by 윤선


오늘도 다시 걷다 @ 나 윤선


Pampelune ~ Puente la Reina (25.1km)
06:15 ~ 14:00 (7시간 45분)



다시 아침이 밝았다.

해가 떠오르면서 노란 밀밭이 붉게 변하는 순간은 참 사랑스럽다.




오늘부터는 함께가 아닌 혼자다.

앞서 떠나는 두 아저씨를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새벽을 즐기며 발걸음을 옮겨본다.



붉게 변한 밀밭의 아름다움은 떠오르는 태양의 작품이다. @ 나 윤선



아저씨들과의 이별도 무색하게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며 자주 마주쳤다.



그도 그럴것이 사람이 뛰거나 자전거를 타지 않는 이상에야 걷는 속도는 거의 비슷하다.

앞서나갔다 하더라도 잠시 길가의 바에 앉아 카페 콘 레체(카페라떼) 한 잔 마시고 있으면 일행이 뒤따라 오게 된다.

그렇게 먼저 출발하였다 하더라도 다시 만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어느덧 밝아진 하늘 @ 나 윤선



오늘은 나무 한 그루 없는 너른 평야 길이 펼쳐졌다.

이런 길은 한낮에 걸으면 모든 태양의 에너지가 나의 정수리로 향한다.

하지만 선선한 아침에 그것도 파란 하늘을 마주하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이다.



걷는 내내 나의 마음도 평안해진다.



길 가의 나무 한 그루가 소중하다 @ 나 윤선



혼자 걷는다고 해서 외롭지는 않다.

주변이 온통 나와 함께이다.

잠시 숨을 고르는 데 만난 달팽이를 보면서도 힘을 얻는다.



까미노를 함께 걷는 달팽이 @ 나 윤선
저 멀리 풍차가 보인다 @ 나 윤선


길을 걷다보니 저 멀리 흰 풍차가 보인다.

오늘의 여정은 저 풍차를 넘어가는걸까?

나의 궁금증을 확인할 방법은 그저 걷는 것이다.



하지만 가까워보였던 풍차는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 나 윤선



금방이라도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은 풍차였는데,

한참을 걸어도 풍차 쪽으로 갈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약간 기대한 탓인지

잡힐 듯 잡히지 않은 풍차를 바라보다보니 발목이 다시 시큰거린다. 통증이 꽤 심해졌다.



어느덧 풍차 아래 까지 도착했다 @ 나 윤선


그렇게 무거워진 다리를 붙잡고 묵묵히 풍차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한참 쯤 가니 풍차 아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멀리서 볼 때 작은 성냥깨비 같았던 풍차는 거대한 위용을 드러냈다.



그렇게 풍차로 가까워졌을 때 아저씨들과 다시 조우했다. 반가운 나머지 아저씨들께 발목이 아프다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아저씨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럴꺼면 포기해. 집에 가~“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다.

욱하는 마음도 들었다.

다리가 아플지언정 이 길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어떻게든 나는 이 길을 끝까지 갈꺼라고 순간 다짐했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포기요?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인데요’



바람의 언덕 @ 나 윤선



그렇게 풍차 쪽으로 올라오니 주변이 훤히 보이는 바람의 언덕에 도착했다. 순례자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나를 반긴다. 이 곳에 오니 그동안 풍차를 따라 힘들게 걸어오면서 흘린 땀방울이 모두 식는 것 같았다.



바람의 언덕과 그 풍경 @ 나 윤선



잠깐 땀을 식히고 다시 길을 떠난다.

다시 밀밭이 넓게 펼쳐졌다.



오늘의 마을로 가는 길 @ 나 윤선



정오가 되니 햇살이 점점 뜨거워졌다.

조금 더 속도를 내 오늘 숙박할 마을인 Puente la Reina로 향한다.





도착하기직전 한 마을의 성당 앞에 도착했다.

오늘은 목요일이라 주일도 아닌데 사람들이 가득하다. 어떤 행사라도 있는걸까?



성당을 바라보며 잠시 묵상을 한다.

‘오늘도 무사히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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