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들을 걷게 하는가

D-30

by 윤선


Puente la Reina - Estella (22.4km)
06:30 ~ 13:00 (6시간 30분)



또다시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느덧 까미노를 걸은 지 5일 째,

짐을 챙기는 것도 새벽에 일어나 길을 떠나는 것도 어느덧 조금씩 익숙해졌다.



점점 동이 터오르는 하늘을 보며 걷는데,

까미노를 가로질러 반대편 풀밭으로 가는 달팽이를 만났다.



‘너도 오늘 하루를 시작해 길을 걷는구나’

이 달팽이는 언제부터 이 길을 건너기 시작한걸까?

아마도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밤부터 움직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몸 전체에서 점액을 내뿜어 미끄러지듯 흙바닥을 이동하는 달팽이.

작은 움직임으로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나인듯 감정 이입을 하게 된다.



‘달팽이야. 이제 반대쪽 풀밭이 머지 않았어. 조금만 힘내!’ 그렇게 달팽이에게 응원을 건네고 다시 길을 출발한다.









이번에는 길에서 개미 친구들을 만났다.



조금 멀찍이 떨어져 앉아 개미가 식량을 나르는 것을 살펴보았다. 자기 몸짓보다 몇배나 더 큰 밀알로 추정되는 그것을 열심히 옮기는 중이었다.

이고 가는 중에도 밀알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작지만 단단한 다리로 다시 그것을 들어올리곤 길을 떠났다. 너무 큰 밀알은 여러 마리의 개미가 함께 들어 옮기기도 했다.



예전에 책에서 개미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던 적이 있다. 다마레이 장군은 전쟁에서 패하고 숲으로 숨어들었을 때, 한 개미가 알을 나르는 것을 보았다.

69번을 실패했지만 70번째에 성공하여 개미굴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비로소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다고 하였다.



하물며 작은 개미도 생존을 위해 이렇듯 매일 노력하며 살아가는데, 나는 스무살이 넘는 지금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나?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개미의 모습을 보며 나를 돌아본다.









걷는 길은 심심할 틈이 없다.

길 가에 심어진 포도밭을 구경하고,

이름모를 노란 꽃도 구경한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언덕도 바라본다.

오늘의 여정은 저 언덕을 넘는 것인지 상상해보기도한다. 지금이라면 아마 구글맵으로 이동경로를 미리 파악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기에 오로지 화살표에 따라 이동해야했다.



지금 내가 어디쯤 왔는지,

생장에서 나눠 준 순례자 여권 뒷편을 참고할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나는 지도 없이 화살표를 걸었던 그 때가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언젠가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할 수 있으니까.



아저씨들과 또다시 조우했다.

아저씨 한분이 앞으로 펼쳐진 길이 너무 예쁘다며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셨다.

아저씨 덕분에 이 사진은 나의 인생 사진이 되었다.





부평지하상가에서 5천원 주고 산 티.

여행할 때 자주 입던 스판기가 있던 검은 바지.

유럽 여행 중에 산 등산용 모자.

한국에서 들고 온 배낭.

분신처럼 들고다녔던 canon 카메라 가방.



이 사진 덕분에 15년이 지난 지금도 이 날을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고마워요 Mr.Kim 아저씨!








다시 너른 밀밭이 펼쳐진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런데 저 멀리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길을 걷는 아저씨가 보였다.



한국에 있는 강아지가 생각나기도 하고,

괜히 인사를 한번 건네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아저씨와 강아지 이름은 아브샤와 압빠.

(발음이 들리는대로 다이어리에 적어뒀던 것 같다.)



아저씨는 자신의 가족인 강아지와 함께 이 길을 걷고있다고 했다. 강아지도 그런 주인의 마음을 아는 듯 묵묵히 아저씨를 따라 걷고 있었다.





오늘 새벽에 만난 달팽이와 개미.

그리고 이브샤와 압빠까지.



무엇이 이들을 걷게 했을까?



며칠 뒤 다시 이브샤와 압빠를 만난적이 있다.

그 때 압빠는 발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만큼 까미노는 동물들에게도 쉽지 않은 그런 길이다. 사랑하는 주인의 곁을 함께 하고 싶어서 걷지 않을까?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그 마음을 조금은 헤아려본다.



‘나도 40년 후에는 나의 평생 짝꿍과 함께 이 곳을 걸어야겠다’고 작게 다짐해본다.





오늘 나의 종착지인 Estella에 도착했다.

아저씨들은 오늘 좀 더 멀리 걸어 숙박하겠다고 하셨다. 그동안 이별 아닌 이별을 하며 종종 즐겁게 만나 대화를 나누었는데, 왠지 이번에는 정말로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들께 사진을 청했다.

지나가는 순례객에게 사진을 한장 찍어달라고 부탁드렸고, 다이어리 맨 뒷쪽에 아저씨의 연락처와 이메일을 적었다.





한국가면 연락하기로 우리는 그렇게 약속하고 헤어졌다.


아저씨들 산티아고까지 힘내세요!

Buen Camino!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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