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8
Torres del Rio ~ Logrono (20.3km)
06:00 ~11: 00 (5시간)
어젯밤 이제 막 잠들려고 침대에 누었을 때, 천둥 번개와 빗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두들기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었는데,
새벽에 일어나 보니 다행히 비가 갰다.
오늘은 왠지 모르게 일찍 눈이 떠졌다.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천천히 준비를 하고 6시가 되자 길을 나섰다.
오늘 길을 함께 시작한 친구는 브리첼이다.
브리첼은 영국에서 와서 혼자 이 길을 걷는 중이다.
늘 따뜻한 미소로 괜찮냐고 안부를 물어보는 브리첼이 있어서 든든하다.
걷다보니 흙냄새가 난다.
비온 뒤에만 맡을 수 있는 향긋한 흙냄새가 내 코를 찌른다.
길 전체에 퍼져있는 흙냄새에 무언가 취하는 느낌도 든다.
‘한국에서는 내가 이 흙냄새를 맡으며 살아본 적이 있던가?‘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소중함을 이 길을 걸으며 하나씩 깨닫는다.
동이 트니 하늘은 점점 맑아지고
눈 앞에는 예쁜 풍경의 길이 놓여있다.
이 길을 걷다보니 갑자기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문장 하나가 떠오른다.
케 세라 세라.
Que será, será.
영어로 Whatever will be, will be.
될 대로 되라.
될 일은 (결국) 된다 라는 뜻이다.
Doris Day가 ‘The Man Who Knew Too Much’라는 영화에 출연해서 부른 주제가라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건 이 노래의 가사 일부분이었다.
내가 작은 소녀였을 때,
나는 엄마에게 물어봤죠.
내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예뻐질 수 있을까?
내가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우리 엄마는 이렇게 말했죠.
케 세레 세라
무엇이든지 될 거야.
미래는 우리가 볼 수 있는게 아니야.
케 세라 세라.
무엇이든지 되겠지.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복학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오늘 나의 인생이 마치 이 까미노 길에 놓여진 것 처럼 느껴졌다.
그런 나에게 케 세라 세라는 용기를 주는 문장이었다.
무엇이든지 될 거야.
내가 보고자 하면,
내가 가고자 하면,
내가 생각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묵묵히 그저 이 길을 걸어나갔을 때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 처럼
나도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한참을 사색을 하며 길을 걷던 중, 갑자기 클락션 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아저씨가 클락션을 누르며 나에게 ‘최고’라는 엄지를 들어 응원하고 있었다.
나도 아저씨를 향해 크게 “무쵸 그라시아스” 라고 외쳐본다.
길 위에서 뜻하지 않게 받는 응원.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을 미리 알고 있는 듯한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이 오늘도 나를 걷게 한다.
케 세라 세라.
어떻게든 되겠지.
이렇게 매일 걷다보면 언젠가 산티아고에 도착할거야.
그렇게 내 인생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흘러갈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