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길을 걷다

D-27

by 윤선



Logrono ~ Najera (29km)
05:30 ~ 13:00 (7시간 30분)



오늘은 갈 길이 멀기에

아직 동이 트기 전이지만 서둘러 길을 나선다.



밤이 지나면 새벽이 찾아오고

새벽이 지나면 아침이 온다.



늘 어두울 것만 같은 우리 인생도

언젠가 긴 터널을 끝으로 밝은 빛을 맞이할 순간이 있을 것이다.





간밤에 내린 비로 길은 어제와 같이 촉촉하다.

호숫가에 오리들은 신이나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는 듯 하다.





까미노 길 위에 있는 오리가 행여 놀랄까 싶어 조심스레 옆으로 비켜 지나간다.

오리는 이 길이 까미노라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아마 우리도 이 길이 까미노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그저 일상을 살아가다 걷게 되는 또는 여행 중에 우연히 걷게 된 그저 ‘길’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내딛는 모든 길이 어쩌면 나의 순례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참 길을 걷다보니 왼편에 철조망이 보인다.

나뭇가지를 하나 하나 엮었나 싶었던 철조망이 가까이서 보니 십자가 모양의 나뭇가지가 수십개가 매달려 있었다.





이 나뭇가지를 걸게 된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십자가를 철조망 위에 걸어두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며 그리운 마음을 담았을까?

아니면 인생이라는 십자가를 지고 있는 나를 위해 걸었을까?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긴 것 같아 한참을 서서 들여다 보았다.



모양도

굵기도

크기도

전부 다른 십자가였지만,

그 안에는 분명 각자의 소망이 담겨 있었다.



나도 내 안에 십자가를 떠올려 본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할까?

나는 무엇을 짊어지며 살아야할까?




배낭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발목의 시린 통증이 내 몸을 감싸지만

나는 오늘도 걸어야 한다.





오늘은 밀밭보다 포도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 곳 스페인은 포도를 재배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여름에는 덥고 건조하며,

겨울에는 서늘하고 비가 자주 내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밀밭보다는 왠지모르게 포도밭이 더 정이 간다.






오늘 묵게 될 Najera 까지 조금 더 힘을 내본다.

자전거로 지나가는 사람들.

두 다리로 걷는 사람들.



각자의 방법으로 나만의 길을 찾아나가는 이 곳.

정답은 없다.

그저 내 마음이 시키는대로 행할 뿐이다.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순례자 여권을 확인하는 알베르게 주인이 나에게 “South Korea”에서 왔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나에게 요즘 한국인들이 알베르게에 자주 온다며 WELCOME을 한국어로 적어달라며 종이와 펜을 주었다.



앞으로 올 한국인들에게 내가 건낼 수 있는 인사 같아서

최대한 정성껏 적었다.



“반갑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문장 하나로 오늘의 힘들었던 하루에 위로가 되길 바라며.

알베르게 주인이 바라는 것도 이 마음일 것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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