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6
Najera ~ Santo. Domingo de la calzada (20.8km)
06:30 ~ 11:30
간만에 늦잠을 잤다.
늦잠이라고 해봤자 새벽 6시에 슬그머니 일어난 것 뿐이다.
왜냐면 까미노 길 위에서는 아직 동이 트기 전,
어둠이 깔려있는 시간에도 사람들이 분주히 짐을 챙겨 길을 나서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사람들이 새벽에 부스럭 소리를 내며 짐을 챙길 때 마다
나도 지금 출발해야하나 라는 불안한 마음이 몰려왔다.
하지만 오늘은 그 마음을 내려놔본다.
나는 나만의 길을 걸으면 되는 것이다.
서두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좀 더 잠을 청해본다.
오늘따라 침낭은 좀 더 포근했다.
그렇게 한참을 부비적 거리다가 6시 반쯤 길을 나섰다.
나오니 이미 스페인의 해는 높게 떠있었다.
오늘은 나무도 찾기 어려운 너른 밀밭이 펼쳐져 있었다.
끝없이 이어진 길.
앞서 걷는 사람.
길 주변에 핀 빨간 개양귀비를 바라보면서 걷는다.
급할 이유가 전혀 없다.
내가 카미노에 온 이유는 나를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한국에 돌아가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지,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나의 속마음을 묻기 위해서다.
그저 천천히 내 주변을 살피고,
내 마음을 돌아보는 것.
지금 내가 이 길 위에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만약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완주가 목표였더라면,
나는 이 길 위에 핀 이름 모를 들꽃과 빨갛게 수놓은 양귀비꽃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길가에 핀 꽃들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내 소소한 일상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
그 것이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한번 더 깨닫게 된다.
서두르지 마라.
그러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될 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