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잡함이 싫어 San Anton으로 도망가다.

D-22

by 윤선


Burgos ~ San Anton (36.6km)
06:20 ~ 15:00 (8시간 40분)



다시 오늘도 시작이다.

어제 부르고스는 광란의 밤이었다.




불금이라서 그랬던걸까.

밖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신이난 소리에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

길에는 사람이 북적거리고,

레스토랑에는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듯 했다.





대도시를 그리워했던 순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나는 다시 고요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오늘 마음을 다잡고 다시 길을 나선다.







까미노 이정표는 언제봐도 반갑다.

이 길이 맞나 헷갈릴 즈음,

또는 뭔가 지루해질 틈에 하나씩 보인다.




까미노 길에는 돌무더기가 많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십자가가 있다.




길을 걷다가 혹 돌아가신 분들의 무덤인걸까?

아니면 까미노 한 켠에 묻어달라는 사람들의 유언이 담긴 걸까?

혹은 순례자들이 혹 넘어질까 싶어 사람들의 배려로 하나씩 쌓이게 된 돌일까?




알 수 없지만 이런 돌 무더기를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숙연해진다.





오늘은 유난히 즐겁다.

바람이 내 등을 밀어주고,

내 머리 위로는 구름이 같이 걷는 느낌.

이런게 행복이구나 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오늘 묵으려는 마을 Hontanas에 도착했다.

알베르게를 가려고 길을 걷는데 길가 바에서 그동안 길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인사를 건넨다.

반가움도 잠시,

다시 부르고스에서의 번잡함이 떠오른다.




오늘은 나 혼자 고요히 보내고 싶다.

내 마음 속 이야기에 조용히 귀를 기울여본다.




풀었던 배낭을 다시 고쳐 매고,

마을을 하나 더 가보기로 한다.




친구들에게는 곧 만나자며 ‘아디오스’를 전한다.

그렇게 오늘은 평소보다 좀 더 걷기로 했다.






다행히 가는 길은 길게 뻗은 나무가 있는 길이었다.

더운 스페인의 햇살을 가려주었다.



오늘의 종착지는 San Anton이다.

너무 늦게 도착하지 않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어느 무너진 성당 같은 곳을 만났다.

이 곳이 바로 San anton 이었다.




이미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이 짐을 풀고 쉬고 있었다.

내가 원하던 대로 이 곳의 숙박객은 나를 포함해 총 4명.

우리를 기다려준 주인의 이름은 마르셸.





마르셸은 우리를 위해 직접 요리를 해주었다.

무언가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쌌던 이 곳.

식당 벽 한 쪽에는 마르셸이 걸었던 그의 순례길 여정이 기록되어 있었다.





마르셸의 아들의 이름은 산티아고.

까미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대성당을 본따 지었다고 했다.

산티아고에게는 이 순례길이, 알베르게가 놀이터이다.



산티아고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적어도 아버지가 그랬듯,

그만의 사명을 찾아 자신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저녁을 먹고 난 후,

마르셀이 들려주는 기타 선율에 귀 기울여본다.

멕시칸 친구 역시 자신의 마음을 담아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무너진 이 성당이 이토록 좋을 줄이야.

비록 따뜻한 물은 나오지 않는 샤워실이었지만,

그럼에도 행복했다.

조금 더 걸어오길 잘했다.



오늘은 이 곳에서 밤을 청해본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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