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1
San Anton ~ Boadilla del Camino (22.4km)
07:30 ~ 12:30 (5시간)
꿈과 같았던 산 안톤에서의 하루.
무너진 성당에서 묵었던 하루는 정말 특별했다.
주슬린,
멕시칸 친구,
스윗하게 본 뉘 (프랑스어로 잘자, 내 귀에는 본위라고 들렸던) 프랑스 친구,
그리고 알베르게 주인 마르셸.
그들이 주었던 따뜻함을 가슴 속에 품은 채 오늘도 길을 나선다.
저 멀리 보였던 이름 모를 고성이 내 눈 앞에 점점 더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그럴 수록 밀밭을 붉게 물들였던 태양도 어느 순간 내 머리 쪽으로 올라선다.
탁트인 시야와 자연의 아름다움은 내 마음을 매혹시킨다.
이 길을 매일 산책하는 것 같은 강아지를 만났다.
강아지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너 참 좋은 곳에서 사는구나.’
이 길을 매일 걸으며 산책할 수 있다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강아지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문득 한국에서의 삶도 떠오른다.
내가 살았던 동네는?
사계절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이 참 아름다운데.
특히 가을에는 은행나무에서 떨어지는 은행 열매로 고약하지만 정다운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내가 살았던 그 길도 누군가에게는 부러움과 아름다움이 될 수 있겠구나’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달렸다는 그 말이 떠올랐다.
이 길도 처음에는 흙이 덮힌 길은 아니었을 것이다.
수백년, 혹은 그보다도 오래전부터 이 곳을 드나들던 사람들이 남긴 작은 발걸음 하나 하나가 모여 길을 만들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자주 다니다보니,
이 곳에는 야생화나 들풀이 자라지 않게 되었고,
어느덧 까미노 순례길이라는 이름이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길 위에는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작은 돌을 쌓아 화살표를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우리의 작은 발걸음으로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오늘 묵을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새로운 소식이 들려온다.
앞서 한국인들이 걷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내일 서둘러 부지런히 걷는다면 그들을 만날 수 있다.
얼마만에 만나보는 한국인인지!
아저씨들 이후니까 근 열흘만에 만나는 한국인이다.
한국인이 보고 싶은 걸까.
아니면 한식이 먹고 싶은걸까.
오늘은 푹 자고 내일 발걸음을 재촉하기로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