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아리랑을 부르다.

D-20

by 윤선


Boadilia del camino ~ Carrion de los Condes (26.9km)
06:00 ~ 11:30 (5시간 30분)



오늘 발걸음은 왠지모르게 가볍다.

오랜만에 한국인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인걸까.




길을 걸으며 마주하는 풍경이 모두 아름답게만 보인다.






오늘 길에는 유난히 까미노 이정표가 많았다.

표지판에도,

길가의 표지석에도,

가리비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특히 순례자를 상징하는 듯한 조형물에 내 눈을 사로잡았다.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의 가슴에 가리비 문양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각자 이 길을 걷는 이유는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 길은 결국 산티아고로 다다를 것이라는 믿음.

끝없이 펼쳐진 길 위에서

인생이라는 평원 위에서

우리가 가지고 가야할 것은 결국 이 믿음이다.




오늘도 그렇게 나의 길을 걷는 순례자들을 별들이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을 비추고 있다.




어느덧 도착한 마을에서 한국인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반갑고 감사한 마음.

함께 마트에서 장을 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샐러드 거리와 함께 쌀, 그리고 야채를 샀다.

그리고 알베르게의 주방으로가서 누구랄 것 없이 식사를 할 준비를 했다.

도착하자마자 신기하게도 저마다 자기가 가지고 온 한국의 재료를 꺼내놓았다.

참치캔부터 고춧가루, 다시다 등 이렇게 한 데 모으니 참치찌개를 끓일 수 있을 것 같다.




얼마만에 먹어보는 한식인지.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오래된 인연인듯 반갑고 익숙하기만 하다.





스페인의 쌀은 마치 베트남에서 먹던 안남미와 비슷했다.

길고 얇은 쌀 모양에 찰기는 없어 푸석거린다.

하지만 그래도 어떠랴.

오랜만에 정답게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밥은 정말 맛있었다.



그렇게 배부르게 점심을 먹고 동네 산책을 나갔다.

그러던 중 성당 아래에서 한 수녀님을 뵙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장애우들과 함께 모임을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온 우리를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다.

생각지도 못했던 만남이지만 자연스럽게 그 장소로 이끌리게 되었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천사가 들려주는 목소리인 듯 평안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한참을 들었을까.

수녀님께서는 우리에게 ‘한국의 노래를 들려줄 수 있냐’는 말씀을 하셨다.




잠시 당황했던 우리.

하지만 이내 우리는 동시에 한 노래를 떠올렸다.

바로 ‘아리랑’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 곳에서 서서 스페인 사람들을 향해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다.

언어는 각자 다르지만

그들은 마치 아리랑의 가사를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리랑을 부르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애써 나오려는 눈물을 삼키며 언니들과 함께 끝까지 불렀다.



그렇게 노래가 끝나고,

우리는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알베르게에 돌아와서도 그 감동은 한참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어미 고양이 한 마리와 새끼 고양이들이 알베르게 한 켠에서 정답게 놀고 있는 그 순간에도 말이다.



나는 오늘 어쩌면 천사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




행복이란

그저 지금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사람의 것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 눈에는 어딘가 조금은 불편해 보이는 장애우분들이었지만,

그들의 표정, 그리고 눈빛에는 진정한 행복이 담겨있는 듯 했다.




이렇게 오늘도 길 위해서 하나씩 배워간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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