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귀여운 방해꾼

D-13

by 윤선


Astorga ~ Rabanal del Camino (20km)



.

.



오늘처럼 발걸음이 가벼운 날이 또 있었을까.

파란 하늘 만큼이나 내 마음도 파랗게 물들었다.






동이 트는 풍경.

그 아래 저마다의 방법으로 걷는 사람들.



그들의 발걸음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셔터를 눌렀지만,

아직 빛이 온전하지 않은 새벽이라 많이 흔들렸다.



그러면 어떤가.

이 때 뷰파인더를 통해 본 모습이 내 마음 속에 깊이 담겨있는 걸.





돌부리 하나 없는 평평한 길.

잠깐 눈을 감으며 걸어본다.

귓가에 스치는 바람 소리가 들린다.



두 팔도 한번 활짝 벌려본다.

옷길을 흔들어대는 바람이 느껴진다.

바람의 소리와 숨결을 느껴본 것이 얼마만인가.

아마도 태어나 처음이지 않을까 싶었다.



발은 걷고 있지만,

내 오감과 마음은 활짝 열려있다.



행복한 기운이 내 안 가득 스며들었다.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는 귀여운 방해꾼을 만났다.

이름 모를 고양이이다.



고양이에게 손을 뻗으니 자기 목을 긁어달라는 듯 우리에게 가까이 온다.

사람을 좋아하는 고양이인 듯 하다.

자기 목을 긁어줄 순례자가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다가와 인사를 하는 것일까.

마치 우리가 초대된 손님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멈춰서서 고양이를 쓰담아 주니 만족한 듯 다시 돌아섰다.





이번엔 엄청난 무리의 양 떼와 만났다.

우리보다 앞서 걷던 사람들도 어마어마한 양 떼 무리에 오도가도 못하고 갇혀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다들 표정은 하나같이 밝다.

마치 이 장애물이 평생 내 길을 가로막지 않음을 아는 것처럼.



지금은 가지 못할지라도,

이 양 떼 무리가 지나가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다시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이 순간을 즐기게 되었다.

양으로 인해 걷지 못하고 가만히 서서 이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이 시간을.



반드시 끝은 있으니까.





마지막 양들이 이동할 때까지 우리는 가만히 서서 이들을 지켜보았다.

양들은 저 넓은 초원으로 다시 향했다.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던 귀여운 방해꾼들의 시간.

오늘 종착지로 가는 길은 조금 늦어졌을지라도 내 안은 행복으로 가득 채워졌던 시간이었다.


토요일 연재
이전 25화길을 걷다보니 나의 첫사랑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