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4
San martino del caminmo ~ Astorga (2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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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벌써 생장에 도착한 지 3주째 되는 날.
시간은 하나 둘 흘러가고,
내 발걸음은 점점 산티아고에 가까워진다.
이제 250km 정도만 더 걸으면 산티아고에 도착한다.
Astorga로 가는 아스팔트 길 위에서 우리는 첫사랑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 오빠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내 첫사랑의 기억도 떠오른다.
나에게 첫사랑이 있었나?
그 때는 사랑인 줄 몰랐지만,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하얀 외모에 키도 큰 편이라 잘생겼다고 느껴졌다.
게다가 수업 태도도 참 바르고 선생님들의 예쁨도 받았다.
주변에 그 아이를 따르는 친구들도 많았고, 당시에 오래 사귄 여자친구도 있었다.
뭔가 나와는 결이 다른 듯한 그 친구.
나는 당시 매우 소극적인 아이로,
같은 반 친구들과 이야기는 하지만 단짝 친구라고 할만한 친구는 없었다.
중 1 때 부터 같은 학원을 다닌, 다른 반에 있었던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 나를 보러 와주면 그제서야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항상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 앉아 가만히 책을 읽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 나에게 그 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아마 짝꿍이 한번 되었던 기억도 난다.
‘무슨 책 읽어?’
나는 그에게 내가 읽던 책 표지를 보여주었다.
‘람세스’
당시 나는 이집트 문명과 관련한 소설책을 만화책방에서 자주 빌려다 읽었다.
그 책을 읽고 있으면 내 몸은 학교에 있지만, 내 머릿속은 마치 고대 이집트 문명 한복판으로 들어간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는 꼭 어른이 되면 이집트에 혼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산티아고에 오기 전 나는 이집트에서 2주간 여행을 하고 왔다.)
두껍고 글자만 빽빽한 그 책을 보여줬는데,
그 아이는 “재밌을 것 같아” 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보고있다는 만화책도 보여주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21세기 소년”
일본 만화였는데, 그 친구가 들려주는 줄거리가 나름 흥미진진했다.
“다 읽으면 너도 빌려줄까? 학교에 가지고 올께.“ 라는 말에
나도 조심스레 “응”이라고 답했다.
그렇게 그 아이와 나는 책으로 친구가 되었다.
시험 기간에는 집 근처 도서관에서 만나게 되면 종종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내심 기다린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아이를 우연히라도 마주치면 설렜던 기억이 아직 내 마음 속 한켠에 있다.
그 때를 떠올리니 다시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길을 걷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그 설렘이 혹시 사랑이었나..?”
사랑으로 쳐준다면,
아마도 그 아이는 나의 첫사랑일 것이다.
갑자기 그 아이는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건강하게 지구 어디선가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그 곳은 월드컵 열기로 가득했다.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월드컵 결승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빨간 티셔츠를 보니 우리나라의 붉은 악마가 떠올랐다.
전 국민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네덜란드에 나쁜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지금 스페인 땅을 밟고 있으니까 왠지 스페인을 응원하고 싶었다.
그들의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친구였던 로라 아줌마의 살짝 눈치를 보긴 했지만 말이다.
이 날, 스페인은 월드컵 우승을 했다.
그들의 함성은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알베르게에 들렸다.
그 기쁨의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내일 또 걷기 위해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