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간의 런던 여행을 마치고
까미노를 가기 위해 마드리드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실 마드리드는 짐을 부치기 위해 들리는 도시였다.
3개월 간 유럽과 터키, 이집트를 여행하며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오는 배낭 하나와 24인치 캐리어와 함께 했다.
이제 그 여행의 마지막 여정이다.
까미노를 걷기 위해 캐리어는 짐이 될 뿐이었다.
진짜 필요한 짐 외에 물건은 캐리어에 넣어 산티아고 근처에 있는 한인 민박집에 미리 보낼 심산이었다.
한인민박집은 미리 예약해두었다.
거의 밤 11시가 되서야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숙소는 마드리드 중심 솔 광장 근처에 있던 한인 민박집.
이미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
길거리에는 밤을 즐기는 사람들 몇이 보였다.
왠지 모르게 스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그들을 경계하며 숙소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한인민박집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거실에서 모든 투숙객이 둥그렇게 앉아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늦게 들어온 나를 환영해주었다.
방에다 짐을 대충 풀고 나도 그 모임에 합류했다.
마드리드에서 모인 6명의 한국인.
우리는 여행자인 동시에 이방인이었다.
타지에서 우리는 더 솔직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는 비밀 이야기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날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각자 가진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겉으로 봤을 때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각자 이런 슬픔을 가지고 여행을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네지 않으며
우리는 그저 서로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그 날 마드리드 공기는 꽤 쌀쌀했는데,
거실 안은 우리의 체온으로 온기가 느껴졌다.
그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새벽 동틀 무렵에서야 모두 잠자리에 들러 갔다.
느즈막히 일어나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산티아고로 보낼 짐을 챙겨야 한다.
30일 동안 걸어야 하는데 무엇이 필요할까?
내 배낭은 그리 크지 않기에 정말 꼭 필요한 것만 담아야 했다.
지금 입고있는 옷 외에 여벌옷 하나.
따가운 햇볓을 가려줄 얇은 긴 셔츠 하나.
짧은 나시 원피스 하나.
속옷 1세트.
쪼리 하나.
세면도구 작은 것.
렌즈와 세정액.
스포츠타올.
모자.
양말 한켤레.
다이어리.
넷북.
여권.
핸드폰.
Canon 400d.
이정도 넣었는데 가방이 꽉 찼다.
무게를 재보니 8kg 정도 나갔다.
배낭에 허리 끈이 있어서 생각보다 어깨에 많은 부담이 되진 않았다.
넷북을 부쳐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지만,
종종 부모님께 이메일을 보내야 하니 가져가기로 마음 먹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라 카카오톡도 당연히 없었다.)
그렇게 짐을 다시 챙기고 캐리어를 들고 솔 광장 근처에 있는 중앙 우체국으로 향했다.
큰 박스를 구하지 못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우체국에서 박스를 팔고 있었다.
가장 큰 박스를 구매해 캐리어를 넣었다.
그리고 산티아고에 있는 한인민박집 주소를 적어 보냈다.
지금 기억으로는 비용이 약 25유로 정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짐을 부치고 나니 왠지 모르는 해방감을 느꼈다.
좀 더 나의 몸이 자유로워진 기분이랄까.
그 기분으로 나는 마드리드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솔광장에서 벗어나 마드리드 왕궁 쪽으로 걷다보니 시장을 발견했다.
산 미구엘 시장.
원래는 성벽 바깥 쪽 노천 시장이었던 이 곳은
대대적인 현대화 공사로 현재는 깔끔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여러 형형색색의 과일부터
스페인하면 떠오르는 하몽까지.
훈연된 돼지 뒷다리가 저렇게 걸려 있는 모습은
스페인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마요르 광장 쪽으로 나왔다.
이 곳으로 들어오니 비눗방울을 보고 좋아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아이들의 미소는 티없이 맑고 천진난만하다.
그녀들의 웃음 소리에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마드리드에서 마지막 밤을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유를 만끽했다.
이제 내일이면 까미노로 간다!
나를 부르는 길 Camino 는 매주 토요일 연재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