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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닭 Sep 24. 2022

감사함

내가 던지는 평화의 메시지

신입 사원 연수 날,


  배식을 받기 위해 서 있던 나는 앞사람의 팔이 문신으로 뒤덮인 것을 보았다. 온갖 날개 모양과 알아보기 힘든 글귀가 그려져 있었는데, 나는 그 글귀가 어떤 뜻일지 궁금하여 곧장 물어보았다.

그분은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당황하시더니, 답을 해주셨다


  " 아, 이거 말하기 힘든데... 우리 가족들 잘 되자는 말이에요 ㅎㅎ"


  좌우명, 이름 정도의 답변이 돌아올 거라 예상했기에, 나는 뜻밖의 대답에 놀랐다. 때문에 답변할 타이밍을 놓쳐 "오-"하고 지나갔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말해드리고 싶다.


  "가장 좋은 말이 가장 하기 힘들죠. 멋지네요"




감사해요, 고맙다구요옷!


  감사함, 고마움은 내가 예상치 못할 때만 불쑥 찾아온다. 기대가 없었을 때 나에게 베풀어지는 호의, 스스로도 몰랐던 나의 장점에 대한 칭찬, 급한 나에게 주어지는 뜻밖의 양보 등은 절로 감사함을 만들기 마련이다. 반대로 예측 가능하고 기대하던 것들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이 들기 쉽지 않다. 가령, 여행을 다녀온 동료가 기념품을 나눠주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한 명씩 선물을 받다 보면 곧이어 나의 차례가 다가올 것을 눈치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선물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머리가 바쁘게 돌아간다. 모른 척하다가 깜짝 놀라며 받을까? 미리 리액션하며 감사 인사를 할까? 이런 복잡한 고민 속에서 순수한 고마움은 날아가고 만다. 

  또는 이런 경우에도 감사함이 생긴다. 우습게도, 나는 부모님과의 거리가 멀 수록 효심을 느낀다. 가끔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을 떠올릴 때면, 철없던 어린 시절을 반성하고 부모님께 잘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이다. 나를 여러 조각으로 이루어진 퍼즐이라고 생각했을 때, 몇몇 조각들은 부모님의 관심들로 채워져 있는걸, 커가면서 더욱 느끼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로 부모님께 감사함, 고마움, 죄송함 등이 뭉글뭉글 솟아나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본가를 방문하게 되는 날이면 잔소리와 눈치에 효심이 팍 식어버리곤 한다. '아 이래서였지...'

  가끔은 감사함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도 한다. 책에서 좋은 글귀를 읽거나, 인간관계에서 깨달음을 얻거나 하다 보면 나를 지탱해주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마구마구 솟구친다. 그리고 나는 그 길로 급발진해버려 나의 친한 친구들, 가족에게 그동안 '고마웠다, 감사드린다'는 톡을 날려버리는 것이다. 다행히 이런 톡을 받는 사람들은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기에 내가 자살을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같이 고마움을 표현하거나 '쟤 또 저러네...' 할 뿐이다.

  



진짜... 좋은 뜻인데..?


  그러나 위와 같은 나의 좁은 인간관계를 벗어나면,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감사함'같은 좋은 의미가 변질되어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카페 홍보글로 찾아가게 된 작은 독서모임에서, 나는 총 4명의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모임은 돌아가며 책의 소감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나는 유치원 선생님으로 일한다는 참가자의 발표를 듣고 있었다. 나는 그분의 소감이 인상 깊고 좋다고 생각하여 웃으며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분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는 계속 웃는 사람 싫어해요. 속으로는 다른 생각 하고 있을 것 같아서요"


  발표의 맥락과도 전혀 상관없는 발언이기에, 듣고 있던 나는 그대로 황당한 얼굴로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그분이 어떤 역경을 겪어오며 인생을 살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유 없는 호의는 독이다'라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걸로 보였다. 나는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내 마음이 좋든 싫든 얼마든지, 다른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변질되어 보일 수 있겠구나. 물론 그 유치원 선생님이 특이한 케이스일 수 있지만, 나는 나의 가장 연약한 속살이 칼로 난자되는 기분을 느꼈다. 

  이러한 일화 말고도 여러 사건들은 나의 속살, 즉 순수한 마음에 흉터를 남겨 두었다. 누군가는 이것이 현실이고, 당연한 일이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며 넘기지 않는다. 이런 일이 있을 때 나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되새겨본다. 그 사람들은 마치 물에 빠져 죽기 직전에 어떻게든 살기 위해 버둥거리며 팔을 휘두르다가, 자신을 구하러 온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멍든 속살을 보이기 싫어, 굳은살 대신 가시를 세우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상처 입은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도 그들의 날카로움에 아픔을 느낀다. 그래서 일상 속 여러 면에서 주저할 때가 많다. 가령 나는 업무상의 일로 쪽지를 보낼 때 꼭 첫인사와 끝인사를 작성한다. 업무의 내용은 전달받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걸 알기에, 따로 하루의 안녕을 기하는 말을 넣는 것이다. 


 "남은 하루도 마음 따뜻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이 유별나 보이지는 않을지 고민하곤 한다. 누군가는 나를 보며 머릿속에 꽃밭이 가득한 미친 사람이라 생각하거나 형식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과한 고민인 것은 알고 있다. 다만, '감사함을 표현하자'는 마음이 사그라드는 '자존감 떨어지는 날'에는, 이런 작은 고민 고민들이 걱정을 만들곤 한다. 물론 컨디션이 좋아지는 날에는 정신 차리고 감사인사를 전하지만!




진짜 감사하세요?


  한편으론 정말 감사의 표현이 형식적이게 사용되는 것에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나는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말은 '좋았던 시간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함으로 다음 만남을 기대하는 것'의 의미로 시작되었겠지만, 이제는 그저 인사말처럼 관용어구로 쓰이는 듯하다. 정말로 그 함께했던 시간이 좋았든 아니든. 나는 이 부분이 진심 없는 가식처럼 느껴져 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사회적 표현을 벗어나서, 내가 사용하는 말에서도 감사함을 표현하는데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어느 순간부터 감사의 표현이 의무로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명절 인사와 축의금이 있다.

  한 때 친하게 지냈다가 점점 멀어지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같이 지내는 해에는 명절 인사를 보내기 쉽지만, 떨어진 시간이 길어질수록 인사를 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게 된다. 보내기에는 뭔가 유난인 듯하고, 보내지 않기에는 그동안 내 마음이 가식이었던 건가 하고 자책하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게 되면 나는 느낀다. 내 마음이 그들을 떠났다고. 그래도 고민을 계속하는 건 착해 보이고자 하는 미련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축의금은 어른이 되면서 새롭게 맞이한 이슈였다. 어떤 사람에게 얼마까지 내 돈을 줄 것인가? 막연하게 느꼈던 친애의 감정을 돈으로 평가하는 기분이 들어 이상했다. 축의금은 분명 축하하는 감사의 의미로 전달하는 금액인데, 금액 자체에 신경 써서 고민하게 되니 감사의 본질과 멀어진 것이 분명하다.

  



네 감사합니다


  여러 '감사'에 대한 가치 혼란을 겪어오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나의 감사함을 '표현'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특히나 나는 감정이 무디고 표현이 서툴러서, 마음을 표현하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해오고 있다. 감사함을 주변인들에게 보내는 것도, 쪽지에 감사함을 담는 것도, 브런치라는 공간에 글을 쓰는 것도 감정을 연습의 일종인 것이다. 이제는 나의 순수한 감사함을 곡해해서 듣는다면, 듣는 사람에 어떠한 결핍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내 마음을 다르게 해석한다면, 내가 좋은 일을 하든 나쁜 일을 하든 마음대로 생각할 것이다. 모두의 마음에 드는 정답이란 없으니, 나는 나의 감사함을 표현하기로 했다. 

  공자는 70세에는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라고 말하였다. 나는 민감한 사람으로서 하도 오래 고민하고 눈치보며 살아서 그런지, 어린 나이지만 원하는 대로 살아도 내 행동이 주변인들의 허용범위 안이라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가장 하기 힘든 말들인 좋은 말들을, 열심히 표현하고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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