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게임, '외로움 키우기'
그 아이는 세상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고, 유일한 관심은 게임과 공부, 책이었다. 함께하는 친구들은 있었지만, 대화가 길지는 않았다. 친구들은 그 아이를 독종이라 불렀다. 그는 아침 일어나서부터 쉬는 시간, 점심시간, 화장실 갈 때 등 하굣길까지 항상 공부를 했다. 그러나 '꼭 성공하고 말겠다' 등의 악착같은 마음으로 공부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할 줄 알고 아는 게 공부밖에 없었다. 자정이 넘어 집에 도착하면 새벽 2시까지 게임을 하고, 4시간을 잔 뒤 다시 일어나서 집을 나섰다. 그것이 그 아이의 일상이었고,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까지 잘 아냐면, 그게 나였으니까.
초등학교 때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 생각 없이 살았고, 중~고등학교는 '공부를 하자'는 생각에 공부를 하였다. 나를 혼란스럽게 할 다른 자극들이 없었으므로 그저 공부와 게임을 반복했다. 이런 내가 대학교에 가기 전 내가 한 생각은, '이제 사회에 나가니 사회생활을 제대로 해보자'였다.
하지만 '사회생활'이란 것은 '나'만 마음먹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 인간관계로 만들어진 사회생활은, 기본적으로 '나'와 '타인'의 교류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살에 처음 관심을 외부로 둔 나에게, 세상은 정말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20살, 세상은 나에게 강렬한 빛을 주었다. 이 빛은 다채로우면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눈부셨다. 파스타처럼 난생처음 먹어보는 다양하고 맛난 먹거리, 눈이 즐거워지는 풍경들, 여러 개의 동아리 활동,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잦은 술자리, 술 게임, 나에 대한 호의와 적대감, 의도를 알 수 없는 말과 표정과 행동들, 세상이 원하는 예의범절, 눈치, 그리고 뜻밖의 연애. 1년간의 정신없는 신입생 시절을 통해, 비로소 '남들의 시선'에 비친 '나'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생각하는 대로 살던 나는 점차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21살, 세상은 나에게 대인기피증을 주었다.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세상에 내던져진 아이 같았던 나에게 1년은 너무나도 짧았다. 직관적으로 답을 알려주던 공부와 달리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불이 가까워지면 손을 반사적으로 빼듯이, 다치지 않기 위해 사람의 마음을 읽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사람들을 경계하고 멀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최대한 다니지 않는 곳으로 돌아다녔고, 어색하게 얼굴만 아는 사람과 길에서 마주치는 건 가장 큰 고통으로 느껴졌다.
22살, 두려움에 쫓기던 나는 점차 안정을 되찾았고, 뒤이어 세상은 나에게 외로움을 주었다. 고민과 걱정이 빠져나간 내 마음에는 큰 공허가 생겼고, 그 자리를 외로움이 채운 것이다. 22살 이후로 나는 외로움과 함께 하였다.
세상이 어떠하든 무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그렇지 못한 민감한 사람이었고,
많은 것을 알게 된 후 외로움을 몰랐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외로움은 내가 초청하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불쑥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불청객이었다. 그런 주제에 집주인에게 관심을 달라 떼쓰니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이 녀석은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시기를 귀신같이 알고 찾아와 끈적거리며 매달렸다. 내 어깨 위에 목마를 타듯 짓누르기도 하고,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듯 괴롭히기도 했으며, 아이처럼 드러누워 귀찮게 하기도 했다. 나는 이 아이 같은 녀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다. 마치 게임처럼 '외로움 키우기'가 시작된 것이다.
먼저 나는 외로움을 내쫓으려 노력했다. 이 녀석의 존재를 부정하고 쳐내려 했다. 외로움이 찡찡거리며 존재를 알릴 때 나는 '너는 헛것이다'라고 외치며 부정했다. 그러나 '외로움'이 살고 있는 집이 '나'이기 때문에, 결국 세입자와 집주인의 싸움은 집주인의 패배로 끝났다.
이어서 나는 외로움을 무시하려 했다. 쫓아내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으니 그저 잊고 살려고 했다. 바쁘게 살고 달릴 때는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잠자기 전 어두워진 방 안 등에서 외로움은 다시금 나에게 속삭였다. 외로움은 끈질기게 나를 붙잡고 늘어져서, 피로는 점점 쌓였다.
나는 외로움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기로 했다. 대체 왜 찾아왔는지. 나는 외로움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왜 여기 왔어? 무엇을 원해? 너는 뭐지? 그렇게 외로움을 자세히 살펴보자, 나는 놀라운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만 있는 것처럼 보였던 '외로움'이, 사실은 마치 바퀴벌레 집안 구석구석에 숨어있던 것이다. 이들의 이름은 제각각이고 출신 성분도 모두 달라서, 단순히 '외로움'이라고 부르기 힘든 것들도 많이 있었다. 뚜렷한 이유로 찾아온 외로움도 있었고, 언제 찾아왔는지 모를 외로움도 있었으며, 왜 찾아왔는지 스스로도 모르는 외로움도 있었다. 이렇게 외로움이 다양한데, 나는 그저 한 가지 방법으로 호통치고 무시하니 외로움들을 쫓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도움을 요청했다. 수많은 외로움의 향연에 어질어질함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한 것이다. 신기하게도, 뚜렷한 해결책이 없더라도, 그저 함께 대화함으로써 많은 외로움들을 지워낼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외로움을 품고 있거나 품어본 적 있는 사람들과는 특히 이야기가 잘 통해서, 외로움을 달래는 비법을 전수받을 수도 있었다. 특히 그렇게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은 빛나 보여서,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닮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했다.
나는 강해지기로 했다. 외로움들이 '나' 속에 가득해도 버틸 수 있게 강해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라는 집의 터를 다지고 기둥부터 다시 지어야 했다. 즉, 나는 '나'를 되돌아보아야 했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외로움'에 대해서도 잘 몰랐지만, '나'에 대해서는 더욱 몰랐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나의 취미와 특기는 무엇인지 모든 게 미스터리였다. 그저 물처럼 누워 흘러가던 내가, 나를 바로 세우고 스스로를 깊이 살피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자 행복이었다. 특히 나는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대해 집중해서 기록하기 시작했다. 점차 나에 대한 확신이 서기 시작했고, 이는 자존감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외로움을 덜 의식하게 되었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집중할 여유를 찾게 되었다.
나는 방심했다. 자존감으로 덮어두었던 외로움들은, 자존감이 떨어질 때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었다. 외로움을 정복했다고 생각했던 나는, 다시금 다가오는 외로움에 당황했다. 확신 뒤에 찾아온 혼란은 더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나는 원래부터 틀렸나?'라는 함정에 빠지게 된 것이다. 다행히도 자존감이 회복되면 이런 혼란 또한 잦아들었지만, 나의 근본에 대한 의심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깨달았다. 나는 외로움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달리해야 했다. 외로움은 적이 아니라 삶의 끝까지 함께 가야 하는 인생의 동반자다. 나는 언제든 예상치 못한 외로움들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단체 속에서도 소외된다는 느낌일 수 있고, 진정으로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낙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다. 나는 나의 생각대로 살아왔지만, 세상은 나의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겠지. 옛날에 유행했던 다마고치처럼 외로움도 잘 어르고 달래며 지내봐야겠다. 그야말로 인생게임, '외로움 키우기'다.
햇닭
너는 내게 아픈 가시지만
네가 만든 상처 덕분에
나는 나를 다시 봤다
그래도 좋아한다는 말은 못 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