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딱이를 건드리는 봄바람
인터넷을 뒤적이다 글이 캡처된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 앞에서는 뚝딱거리기 시작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나는 이 '뚝딱거린다'라는 표현이 정말 좋았는데,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생각이 많아지고 쉽게 바보가 되곤 했던 나라서 많은 공감이 되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못 이겨 말도 어눌해지고 행동도 뻣뻣해지는 것이다. 그러고는 자기 전 이불속에서 멍청했던 나를 되돌아보며 몸부림치기도 했지. 그 문구를 다시금 한 번 읽고 싶은데, 며칠째 검색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으으 저장해둘걸! 하지만 뒤늦게 아쉬워해서 뭐하겠는가. 이제는 알고 있다. 붙잡으려 노력하지 않은 것은 쉽게 흘러가버리는걸.
학교나 사회, 직장 등 새로운 환경에서 출발할 때,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음식을 먹기 위해 수저를 들었을 때, 오래전 예약해둔 여행을 위한 짐가방을 잠글 때, 나의 마음을 간지럽혀주는 노래를 들을 때, 힘들게 예매한 콘서트를 볼 때, 기대치 못한 호의를 받을 때 등. 설렘은 일상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설렘은 마치, 길가에서 풍겨온 향긋한 빵 냄새처럼 휴대폰만 보던 고개를 들게 만드는 감정이다. 일상의 지루한 반복을 밀어낼 새롭고 신선한 자극을 주는 것이다.
또한 '설렘'은 단순한 '기대감'보다는 좀 더 달콤하게 느껴진다. 나는 설렘을 떠올리면 '하늘에 떠 있는, 잔뜩 부푼 따뜻하고 몽글한 분홍색 솜사탕'이 떠오른다. 보기만 해도 포근해지는 편안함, 크게 한 입 베어 물고 싶은 마음, 입안에 넣었을 때 사르르 녹아내릴 촉감, 혀를 감싸는 달달함 등이 모두 나의 '설렘'을 자극한다.
한편으로, 설렘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감정인 듯하다. 솜사탕이 구름처럼 날아다니듯, 예기치 못하게 다가와서 휙 지나가버리고 만다. 이렇듯 설렘이란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되새기지 않으면 아차 하는 순간에 지나가버린다.
모두가 설렘을 느끼는 포인트는 다양하겠지만, 나에게 깊게 다가오는 설렘은 역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다. 나는 쉽게 마음을 보이지 않고 먼저 사람들을 천천히 바라보는 편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나랑 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보이게 된다. 공통점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나의 심리적 거리감이 줄어들어서, 그러한 소수의 사람들만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 점점 관심이 깊어져 그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나는 이미 설레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설렘이란 감정이 유독 나에게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나에게 이 감정을 마주할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데에 있다. 나이가 들고 현실의 때가 마음에 묻어나면서 감정은 무뎌진다. 나아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에는 철갑을 두르고, 가시도 세운다. '설렘'같이 가볍고 하늘하늘한 감정은 이러한 차가움에 쉽게 튕겨져 나간다. 세월에 깎여나가며 감정이 무뎌지기 전에, 마음이 시키는 대로 의심 없이 따를 수 있는 시기에 설렘은 더 쉽게 찾아오곤 한다.
설레는 동안에, 나는 그 사람으로 마음을 가득 채운다. 그가 남긴 의미 없는 말 하나에도 며칠을 고민하며 의도를 파악하려 하고, 다가가려는 나의 마음이 어떻게 비칠지 고민한다. 작은 부분도 장점으로 느끼고 우러러보게 되며, 칭찬을 마구 하게 된다. 말을 걸기 전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보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한다.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는 대범함을 보여주려 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더욱 묻고 들어주고 싶으며, 공감해주는 그의 모습에 무장해제된다.
나에게 '설렘'과 '사랑'은 다르게 느껴진다.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만들어준다면, '설렘'은 그 사람 자체에 대해 더 집중하게 한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가치관과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취미가 어떻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나에게 보여주는 미소는 어떠한지. 새롭게 알아가는 즐거움은 설렘을 더욱 빛나게 한다.
물론 들뜨는 마음에, 모든 상황을 '설렘이란 색안경'을 끼고 보려 하니 실수를 하기도 한다. 상대의 의도를 잘못 해석해 급발진을 하거나, 상황이 나빠지고 있는데 좋아지고 있다고 착각을 하거나 등이다. 이 작고 여린 설렘을 함부로 대했을 때 결과는 끔찍하다. 마음의 속도가 서로 맞지 않을 때, 설렘은 쉽게 부서지고 사그라들며, 타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설렘이 '솜사탕'이 아니라 마음을 데워주고 있었던 '불씨'였음을 깨닫는다.
빛이 강해질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고 했던가. 설렘이 따뜻했던 만큼, 설렘이 잦아든 마음의 공터는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잠시 나를 안아줬던 설렘은 작은 온기를 남겼으나, 꽁꽁 언 손을 녹이기 위해 뱉은 입김이 추위를 밀어내기엔 역부족인 것처럼, 나는 다시 현실을 자각한다. 설렘은 현실을 잊게 만드는 마력이 커서, 설레는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지만, 설렘이 빠진 나는 숨 막히는 답답함으로 얕은 잠에서 깨어난다.
누군가는 설렘이 잠든 빈자리를 또 다른 설렘으로 채우겠지만, 나는 쓸쓸한 공터에 앉아 설렘이 타고 남은 빈자리를 찬찬히 바라볼 시간이 필요하다.
설렘이 타고 남은 재를 뒤적거리며 '나'를 되돌아본다. 짧은 시간 몰아쳤던 감정들을 추스른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설렜는지 되돌아본다. 소심하고 서툴렀는지, 눈치 없이 타이밍을 잡지 못했던지, 과하게 서둘렀는지, 아니면 전부든지.
설렘이 타고 남은 재를 뒤적거리며 '그'를 되돌아본다. 좀 더 또렷해진 시선으로 다시 바라본다. 색안경 없이 그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본다.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했을지 헤아려본다. 그의 표정을 떠올려보고,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어떤 것들이 있었을지 생각해본다.
설렘이 타고 남은 재를 뒤적거리며 '함께했던 시간'을 되돌아본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살펴본다. 서로의 마음이 통하였는지, 나누었던 이야기는 진실되었는지, 진심으로 상대를 대했는지, 설레도 되는 상황이었는지, 즐거웠는지, 슬펐는지.
설렘이 타고 남은 재를 뒤적이며
무언가를 찾길 한참 동안 반복하다가
늦게서야 미안한 마음으로
남아 있는 재를 살펴본다.
설렘이 타고 남은 자리에는 그리움이라는 재가 남는다.